나를 위로하다 02 밀감빛 노을

밀감빛 노을

by eunring

저녁이 한 올 한 올 내려옵니다

아련한 레이스 커튼이 나부끼듯이

저녁 어스름이 나를 휘감는

고요하고도 적막한 시간입니다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다가

주홍빛 눈부심과 만납니다

서쪽하늘을 물들이는

밀감빛 노을이 소리도 없이

진하디 진한 주홍빛으로 무르익어가며

건너편 아파트 어느 집 창문에 부딪쳐

향기롭게 불타오릅니다


자유 영혼을 팔랑이는 지인들과 떠났던

어느 해 봄날 여행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자유로이 떠나 자유롭게 머무르던

순간들 속에도 밀감빛 노을이 있습니다


귀족이 살던 성의 창문에 부딪쳐

주홍빛으로 타오르던 저녁놀에

마음을 빼앗겨 머무르고 서성이느라

바로 이웃에 있는 미술관 관람시간을

그만 놓치고 말았지만

어느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요

마음의 떠돌이가 되는 것 아닌가요

마음이 닮은 사람들이 함께

떠돌이별들처럼 떠도는 것이

바로 자유여행 아닐까요


밀집도 아니 되고

밀폐와 밀착도 아니 되지만

밀감빛 추억에 젖는 건 그나마 괜찮으니

잠시 기분 좋은 추억에 잠기는 것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대신합니다


구름처럼 자유롭게 쏘댕기며

무릎에 구멍 난 청바지처럼

마음의 창문도 활짝 열고

바람 따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깃털처럼 떠돌아다닐 수 있는

편안한 일상을 꿈꾸듯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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