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05 접시꽃이 핑크핑크해

여름꽃 접시꽃

by eunring

얼핏 보면 무궁화 꽃을 닮았어요

키다리 여름꽃 접시꽃이 아직 덜 자랐는지

작달막한 키에 고운 핑크 꽃을 매달았어요

그냥 지나가기 아쉬워 잠시 바라보다가

사진으로도 찍어봅니다


대개는 겹꽃이 아름다운데

접시꽃은 홑겹이 곱고 예뻐요

쌍꺼풀 진 눈이 크고 선명하지만

외까풀 눈매가 때로 순하고 맑아 보이듯

홑겹 접시꽃이 핑크핑크 사랑스럽습니다


자동차 바퀴처럼 동글납작한 씨앗의 모습이

동그란 접시를 닮아 접시꽃이라는데

꽃 모양도 접시를 닮았으니

이래저래 접시꽃이네요


시골집 낮고 정겨운 담장 곁에

반가운 손님맞이 꽃으로 피어나는

빨강 하양 분홍 키다리 접시꽃은

장마가 올 무렵 밑동 쪽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서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꽃대 위까지

화려한 꽃들이 조랑조랑 예쁘게 피어나죠


신라시대에도 접시꽃이 있었다는데

꽃 이름을 촉규화라고 불렀나 봐요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은

한시 '촉규화(蜀葵花)'에서

자신을 접시꽃에 빗대어 표현했답니다


"거칠고 적막한 밭 모퉁이에

접시꽃 활짝 피어 가지가 휘어졌네

장맛비 그칠 무렵이면 꽃향기 가벼이 날고

초여름 보리 바람에 꽃 그림자도 기우는 듯

수레 타고 말 탄 이는 보아줄 리 없으니

벌과 나비 날아들어 부질없이 기웃기웃

길가에 피어난 꽃 스스로 부끄러워

말없이 고개 숙여 입술을 깨무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 유학생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올랐으나

조그만 이웃나라에서 온 이방인이었을 뿐

신라에 돌아온 후에도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으니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과도 같은

거칠고 적막한 밭 모퉁이에

활짝 피어난 접시꽃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거죠


최치원에게는 초여름 접시꽃이

부끄러움을 견디는 꽃으로 보였겠지만

옛사람들이 울타리 주변에 접시꽃을 심은 것은

껑충 키가 크고 화려한 접시꽃처럼

자식의 벼슬이 높이 오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겼답니다

접시꽃이 능소화와 함께

어사화로도 쓰였다고 하니까요


접시꽃의 꽃말은 단순과 편안이래요

단순하면 편안하고 편안하면

단순해지는 것이니

그보다 좋은 순 없죠

높은 벼슬보다도 더 좋은 것이

단순과 편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키가 덜 자란 핑크 접시꽃을 보며

오늘 하루도 단순하고 편안하게

오늘도 어제만큼만 단순하고

내일도 오늘처럼만 잔잔히

평온하고 무난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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