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71 강아지풀의 마법
영화 '늙은 자전거'
강물이 소리도 없이 반짝이며 흐르듯이
가난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을 품은
할배와 소년의 슬픔이 낡은 자전거를 타고
애틋하게 달려갑니다
아름다운 부여의 풍경을 배경으로
유쾌한 깨알 재미와 함께
따사로운 감동을 싣고 달리는
할아버지의 낡은 자전거에는
아빠를 잃은 소년 풍도와
아들을 잃은 빈자리에 손주를 끌어안은
할배의 사랑이 티격대격 알콩달콩 담겨 있어요
하하 웃으며 보다가 눈물 쏙~
괴팍하고 고약하고 까칠한
강민 할배(최종원)에게는
밥 대신 술과 낡은 자전거뿐인데
어느 날 갑자가 당돌한 그놈
손자 풍도(박민상)가 짠~나타납니다
집 나간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슬픈 소식과 함께 나타난 풍도를
할배는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지만
당돌한 소년 풍도는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불고 기어이 할배 곁에 남게 되죠
풍도 아빠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풍도 엄마는 가출하고
풍도 아빠는 술에 절어 살다가
강도의 돌멩이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지고
죽기 전에 풍도에게 할아버지를 찾아가라고 해요
할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풍도는 이미 알고 있죠
장터에서 낡은 자전거에 잡동사니를 싣고
만물 장사를 하는 풍도 할배는
할매를 먼저 보내고
밥보다 술에 취해 살고 있어요
울고 싶을 때 우는 대신 화를 내고
눈물 대신 술을 마시는 까칠 할배가
할배와 살고 싶다는 풍도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은
강물의 반짝임과 들꽃들의 속삭임과
들풀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 덕분에
애잔하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워요
할배의 평생 친구인 낡은 자전거가
자꾸 고장이 나자 새것으로 바꾸자고 조르는 풍도에게 할배는 말하죠
사람처럼 자전거도 늙는 거라고~
늙은 자전거는
외로운 할아버지의 자전거였다가
낡았지만 할배의 정이 담긴
씩씩한 소년의 자전거가 됩니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들판도 좋고
바람까지도 좋다는 할배의 대답 끝에는
할매의 고향이라는 중얼거림이 매달리며
애잔한 그리움이 듬뿍 ~
참고 견뎌야 한다는 할배의 말씀에
할배도 못하면서~라는
소년의 투덜거림에도
할배에 대한 사랑이 듬뿍~
강아지풀 마법이라는 할배의 장난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소년을 보며
어쩜 그리 똑같이 닮았냐고 웃자
아버지도 나처럼 당했나 묻는
소년의 미소가 햇살처럼 환하고
돌아서서 강물을 보며
내가 당했다고 혼자 중얼거리는
할배의 미소 끝에 안타까움도 듬뿍~
풍도에게 물건값이 싼 도매상들을
함께 다니면서 조르르 일러주고
절마당에서 혼자 울며
지금 울지 않으면
저놈과 이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할배의 하소연에 슬픔의 빛도 반짝~
연잎으로 햇살을 가린 풍도가
부처님께 무엇을 빌었냐고 묻자
다음에 알려주겠다는 할배에게
'내가 녹음기다 내한테 말해라'
풍도의 씩씩함에도 애틋함이 살랑입니다
백마강 달빛에~노래를 부르다 지쳐
옆으로 누워버린 할배 곁에서
풍도는 중얼거려요
'할배 참 조용하데이
너무너무 조용해서 세상에
할배랑 풍도만 있는 것 같다
너무 좋다 할배도 좋제?'
힘없이 옆으로 누운 할아버지와
그 곁에 앉은 손자 풍도의 뒷모습이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처럼
살랑살랑 눈에 아른거립니다
소년 풍도가 활짝 웃으며
씩씩하게 타고 달리는
할배의 늙은 자전거를 마중하듯
초록빛 들녘의 강아지풀들이
마법의 손을 흔들어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소년 풍도를 토닥토탁
강아지풀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요
풍도야
혼자라도 괜찮아
할배의 자전거가 있으니
할배와 함께 한 추억이 있고
그리고 할배 대신 풍도를 아끼는
소박하고 정겨운 이웃들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