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10 지금 말해 줘
영화 '원스'
추억 돋는 음악 영화 '원스'
다시 보아도 여전히 좋아요
다음에 또 봐도 좋을 영화 속에는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들이 함께 합니다
눈썹을 찌그러뜨리며 영혼을 다해 노래하는
사랑을 잃은 그(글렌 한사드)의 곁으로
영혼을 기울여 그의 노래를 듣는
빨간 옷의 그녀가 다가옵니다
현실의 막막함을 끌어안느라
꿈을 내려놓은 그녀(마르게타 이글로바)도
그와 함께 잠시 음악의 꿈에 젖어들고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 어딘가에서도
이루지 못한 꿈 한 조각이
비죽 고개를 내밀어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남녀 주인공 그와 그녀 사이 그 어디쯤에
안타까운 사랑의 빛이 잔잔히 스며있는
영화 '원스'에는 이름 대신 꿈이 있고
미완성이어서 씁쓸한 여운이 깊은
맑고 순수한 사랑이 있어요
아버지의 진공청소기 수리점에서 일하는 그는
밥벌이를 위해 더블린 거리 한복판에서 노래합니다
낮에는 사람들이 잘 아는 노래를 부르다가
어두워지면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죠
'그래서 많이 노력하고 있어
우리 사이에 오해가 많았지'
그는 온 마음을 송두리째 쏟아내듯이
'결국 빛은 날 찾아올 거'라고 노래합니다
지금 말해 줘~라고 울부짖듯이
'Say It To Me Now'를 부르자
손뼉을 치며 그녀가 다가와서 물어요
'낮엔 왜 안 불러요?'
좋은 노래를 낮에 부르지 않는 이유를 묻자
사람들은 아는 노래만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그는 사랑은 잃었으나 가수의 꿈은
아직 놓지 않고 있어요
누구에 대한 노래? 냐고 묻자
아무도 아님~이라고 대답하죠
거짓말이라고 그녀가 또 물어요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이미 떠났다고 그는 대답하지만
'아직 사랑하는 거 알아요'
잊었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그녀가 덧붙입니다
'잊었으면 그런 노래 못 만들어요'
그의 노래 속에 담긴 실연의 상처를
그녀는 한눈에 알아본 거죠
그가 아버지의 청소기 수리점에서
진공청소기를 고친다는 말에
다음날 고장 난 진공청소기를 들고 나타난
그녀에게 배가 고프냐고 묻자
배는 늘 고프다는 대답이 쓸쓸합니다
음악을 아느냐고 묻는 그에게
그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버지가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다고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가 그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었다고 대답하죠
안타깝게도 그녀의 아버지는
손가락에 관절염이 오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답니다
아일랜드는 피아노가 비싸서 사지 못하고
악기점 주인아저씨가 점심시간에
1시간씩 피아노를 치게 해 준다는 그녀가
청소기를 끌고 악기점으로 가는 모습이 웃퍼요
금발에 빨간 옷 그녀가 마음에 드는 피아노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선 채로 보다가
스르르 내려앉으며 환상적이라는 그에게
멘델스존의 곡이라고 알려줍니다
행운아라고 알려진 멘델스존의 피아노 소곡집 '무언가' 중 '베네치아의 뱃노래'죠
음악으로 한 마음이 된 그와 그녀는
낡은 기타와 악기점의 피아노로
그의 자작곡 'Falling Slowly'를
함께 노래하며 연주하는데요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그녀의 옆모습이 참 아름다워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때
가장 눈부시게 빛이 나는 거니까요
한 줄씩 멜로디를 알려주며
'난 당신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을 원하죠
모르기 때문에 더 원해요'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Falling Slowly '는 감성으로 촉촉하고
공감의 아름다움으로 빛이 납니다
악기점 주인아저씨도
말없이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감미로운 명곡이 흐르는 명장면이죠
'희망의 목소리를 높여요
선택은 이미 그대의 것'
엔딩 장면에서도 흐르는 'Falling Slowly'는 영화의 분위기와 장면에 어울리고
그와 그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안타깝게 노래하는 것 같아서
들을 때마다 먹먹합니다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그는 실연의 상처를 노래로 고백합니다
십 년 전 아일랜드 여자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녀는 다른 남자와 떠나버렸고
자신은 더블린에 살고 있는
멍청한 청소기 수리공이라고
그녀는 런던에서 사는데
이젠 그립지 않다며
'잊을래요'라고 노래합니다
밤거리의 버스킹 공연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음악에 귀 기울이며 다가서는
그와 그녀의 잔잔한 뮤직 스토리는
애틋한 러브 스토리이기도 해요
거리에서 꽃을 파는 그녀는
피아노 연주와 노래를 좋아하지만
엄마와 함께 어린 딸 이본카를 데리고
체코에서 온 가난한 이민자일 뿐이라
고단한 삶 속에서 꿈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죠
사는 집 건물에 TV가 한 대뿐이라
이민을 온 이웃들이 함께 보며 영어를 배운다는 그녀의 집에서 딸 이본카를 재우고
문밖에 앉아 음악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사가 없어 미완성인 그의 음악에
그녀가 가사를 붙이기로 합니다
너무 낭만적인 곡이라
가사를 못 쓰겠다는 그는
말동무가 필요했는데
친구가 되어주어 고맙다고 하죠
서로 음악을 공감할 수 있는 말동무
쓸쓸함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친구가
두 사람 모두에게 필요했던 거죠
CD플레이어로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붙이다가 배터리가 떨어지자
딸의 저금통에서 동전을 빌려 배터리를 사고
어두운 밤길을 걸어오며 그녀는 노래합니다
'당신을 본 지 너무 오래 이젠 기억도 안 나요'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붙여 부르기도 하며
밤길을 걷는 그녀의 모습이
애잔한 슬픔으로 물들어요
길거리에서 빨간 장미를 파는 그녀에게
며칠 후 런던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몇 곡 녹음하고 싶은데 그녀의 반주와
화음이 필요하다고 그가 도움을 청합니다
늘 쉼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그녀지만
녹음실을 빌리는 일이며 옷 사는 일에 이어
그의 노래를 들려주고 은행 대출도 받아내고
반주자도 길거리 섭외로 해결하는 등
기꺼이 동행하는 그녀가 생기 차 보여요
음악은 그녀가 아쉽게 내려놓은
안타까운 꿈이니까요
음식점에서 모두 함께 부르는 노래의
노랫말이 꿈을 놓아버린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의 다독임 같아요
'난 나답게 살리라 자유롭게 살리라
문이 하나 닫히더라도
그대를 맞는 창문은 여러 개
그대는 그대답게 살아가라
그대가 잘하는 걸 하라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녀
금을 줘도 바꾸지 않으리'
그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노래를 배경으로
그는 아버지가 아끼는 오토바이를 몰래 타고
그녀와 함께 바람을 쐬러 갑니다
노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바닷가에서
그녀가 이미 결혼했는데 서로 맞지 않아
남편은 아직 체코에 있다는 이야기에
몹시 당황한 듯 보이는 그가
바다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바다를 체코어로 뭐라고 하죠?'
그녀는 '오찬'이라고 대답해요
앞으로 어쩔 생각이냐고 그가 또 묻자
모르겠다는 그녀에게
'그를 사랑해? 가 체코어로 뭐냐' 묻자
'누르 에 샤?'라고 대답하죠
'그럼 누르 에 샤?'
그를 사랑하난고 묻는 그에게
그녀가 체코어로 웃으며 대답합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
그건 무슨 뜻이냐고 그가 연거푸 묻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웃고 말아요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모여
기타 치며 노래하는 그와
피아노 치며 화음을 얹는 그녀
당신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죠~라는
바꾸려 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는
그의 노래에는 절절함이 담겼어요
'그래도 원하는 게 있다면
내게 전화해줘요 그럼 달려갈게요'
녹음을 잠시 쉬는 동안
옆방의 피아노 앞에서 노래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나중에 딸 이본카도 데리고
런던에 가자고 하죠
함께 공연도 하자는 그의 말에
그녀가 웃으며 물어요
'그럼 엄마는?'
저녁에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그에게
'녹음도 끝났는데 불장난이라도 하게요?'
불장난 아니라는 그의 말은 진지하지만
다 부질없다며 돌아서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저녁에 오겠다던 그녀를 기다리지만
그녀는 오지 않죠
런던으로 떠나는 날
그녀의 집에 들르지만 그녀는 집에 없어요
그녀는 늘 일을 하러 다니니까요
그녀의 집에 전화가 없으니 가서 편지하겠다고
그녀의 엄마에게 대신 작별인사를 건네고
그녀와 함께 노래하던 악기점에 들른 그가 피아노를 잠시 바라봅니다
'나는 당신을 몰라요 그래서 더욱 당신을 원하죠
가라앉는 이 배를 붙잡아 집으로 이끌어줘요'
흐르는 노래와 함께 떠나는 그의 모습에 이어
집에 배달된 피아노를 보며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요
피아노를 치다가 창밖을 내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점점 작아지다가
말줄임표처럼 영화는 끝이 납니다
우린 아직 늦지 않았어요~
꿈을 찾아 런던으로 떠나는 그와
현실에 눌러앉은 그녀
느낌표 대신 말줄임표로 대신한
그들의 사랑이 담담해서 쓸쓸하고
쓸쓸함의 깊이만큼 아련해서
오히려 아름다워요
세상 모든 사랑이
꼭 이루어져야 하는 건 아니고
이루지 못한 사랑일수록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