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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l 07. 2024

초록의 시간 797 길 하나를 바꿔 걸으면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대여섯 살 꼬맹이 소녀가

엄마 손을 잡고 가다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할머니가 그러셨어~


꼬맹이의 엉뚱하고도 야무진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푸훗 웃다가 바로 거둬들이며

진지하게 귀를 기울입니다


꼬맹이 소녀는

엄마 손을 흔들어 대며

고개 숙여 피어난 나리꽃 곁을

스쳐 지나는 중입니다


엄마 엄마

예쁜 꽃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부끄러운가 봐 아니면 졸린가 봐

엄마한테 혼나는가 봐

아니면 나한테 인사를 하나 봐

고개를 들면 더 예쁠 텐데

그지 엄마~


그렇구나

할머니가 그러셨구나

엄마가 맞장구를 쳐 줍니다

쪼꼬미 나리꽃이 납작 엎드려 있네~

아하 고개 숙인 나리꽃 이야기군요


아마도 꼬맹이어쩌다

어른들에게서 얻어 들은 얘기를

키다리 나무 곁에 납작하게 피어

고개 숙인 예쁜 나리꽃을 보다가

문득 떠올린 모양입니다


나리꽃처럼 쪼꼬만 꼬맹이가

맹랑하고도 야무진 목소리로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랑스럽게 쫑알거립니다

소녀에게 꽃과 사람은

같은 의미인가 봐요


고개 푹 숙인 나리꽃이

어린 소녀의 눈에는

왠지 안타깝게 보였을 테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꽃은 없다~라

말하고 싶었을 테죠


늘 가던 길이 아니라

길 하나를 바꿔 걸었을 뿐인데

납작 고개 숙인 주홍빛 나리꽃을 만나고

고개 숙인 꽃이 안쓰러워 엄마 손을 흔드는

사랑스러운 소녀의 야무진 목소리에

반짝 웃음 머금게 됩니다


세상에 완벽한 음악가는 없다~

소녀의 흉내를 내 중얼거리며

집에 돌아가면 오랜만에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뜬금 생각도 덤으로 합니다

길 하나를 바꿔 걸은 덕분에 만나는

오늘의 선물입니다


꼬맹이 소녀의 말처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서

수 어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낸

수줍고 내성적이고 섬세음악가 

차이콥스키 사랑 없는 결혼의 비극과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혹평으로

몹시 힘든 시절을 겪었다고 하죠


에게도 어느 순간

길 하나를 바꿀 필요가 있었나 봐요

밝고 천진난만한 모차르트

깊이 존경하고 흠모했다는 그는

천사 같은 모차르트

아이처럼 순수한 모차르트

그의 음악에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맺혀 있다~라고 말했답니다


늘 다니던 자신만의 길을 벗어나

모차르트 시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모차르트의 화사한 유쾌함을 오마주한

밝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쿵 짝짝 3박자 왈츠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그는 각별하게 아꼈다고 해요


1200 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일부러 만난 적은 없다는 열혈 후원자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확신이 알려주는 대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감정을

온전히 자유롭게 담아낸 

예술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며 

자랑스러워한 작품이랍니다


낭만적이고 우아하고

서정적인 세레나데 2악장 왈츠가

'오징어 게임'의 식사 시간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흘러나와

구슬픈 느낌을 더해 주는 것도

생각의 길 하나를 바꾼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의 배경음악은

차이콥스키로 찜합니다

납작 엎드려 피어난 나리꽃과

완벽이라는 말을 앙증맞게 쫑알거린

쪼꼬미 소녀를 생각하며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꽃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음악가도 없으나

내 귀에는 이미 완벽에 가까운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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