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43 가을이라는 이름의 꽃
꽃이라는 이름의 예술
여름 내내 아파트 앞을 지키던 수국 화분이
어느 날 문득 가을꽃 국화 화분으로 바뀌고
산책길에 지나는 꽃가게의 화분들도
노랑노랑 가을꽃 국화에게 자리를 내주었어요
그래서 조그만 국화 화분을 하나 사서
베란다 창가에 두었습니다
금빛 햇살 쏟아지는 가을 창가에
활짝 핀 국화꽃이 아닌
꽃봉오리 맺힌 화분으로 놓아두었죠
가을볕 받아 안으며 노랗게 피어나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것도
예술은 예술이니
가을꽃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예술을 해보고 싶었으나
웬일인지 꽃이 피어나지 않고
망울망울 꽃망울인 채로 시들해져 버렸답니다
내 손이 약손이다~어루만져도 소용없고
금빛 햇살도 살랑이는 바람도
가을꽃을 피워내지 못했어요
시들어가는 국화 화분을
우두커니 내다보고 있노라니
그리스 신화 속에 피어난
꽃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꽃을 사랑한 타케스라는 청년이
꽃이 시드는 것이 애처롭고 안타까워
시들지 않는 꽃을 만들기로 했다는군요
꽃이라는 이름의 예술을 했던 거죠
곱게 피어난 꽃그림을 오려서
마음에 드는 꽃을 만들었는데
오려서 만든 꽃에 향기까지 담기는 했으나
영혼까지는 불어넣지 못해 생명이 깃들지 않아
바람이 불어오자 꽃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져
더욱 깊은 슬픔에 잠기고 말았답니다
꽃의 여신 플로라가 안쓰러운 마음에
타케스가 오려 만든 꽃에 후~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는데
그 꽃이 바로 국화라고 해요
신이 가장 나중에 만든 꽃이라는
국화는 차가운 가을을
그대로 품어 안은 가을꽃이죠
쌉싸름한 향기도 가을을 닮아
맑고 그윽합니다
햇살 눈부신 가을 창가에
가을이라는 이름의 꽃
국화를 피워내지 못한 아쉬움을
국화차 한 잔으로 대신합니다
투명한 유리잔 안에서 은은한 향으로
천천히 피어나는 국화도
꽃은 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