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47 사랑에 관한 판타지
영화 '운디네'
영화의 제목이고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운디네'는 물의 정령이랍니다
가냘프고 아름다운 소녀 모습을 한 운디네는
스스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의 원조격이라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면
인간의 영혼을 가질 수 있으나
상대에게 배신당하면 안타깝게도 그를 죽이고
다시 물로 돌아가야 하는 가련한 운디네는
비극적인 사랑의 운명을 타고난 요정이래요
운디네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유난히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데
그가 운디네의 사랑을 배신하게 되면
물의 정령 운디네가 복수를 한답니다
'내 눈물로 그를 죽였다'고 외치며
뽀그르르 물거품을 일으켜 익사시킨다는 거죠
물의 정령 운디네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인
독일 작가 푸케의 '물의 요정 이야기:운디네'는
물의 정령 운디네 신화를 재해석한
낭만주의적 예술 동화이고
독일 전후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단편소설 '운니네가 간다'는 영화 '운디네'에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라고 해요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을
바흐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피아노 콘체르토 BWV 974' 선율이
영화의 주제곡인 듯 강물처럼 흐르고
이별과 새로운 만남 속에서 엇갈린 사랑까지도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흐르는
영화 '운디네'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베를린이 배경이랍니다
운명의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에게
배신당한 운디네의 슬프고 신비롭고
안타깝고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래요
도시 개발 전문 역사학자인
운디네(폴라 비어)는 베를린 슈프레 강이 내려다보이는 박물관에서 관광객이나 탐방객들에게 베를린 도시의 역사를 강의하고
도시 개발과 건물의 내력 등을 해설해 주는 프리랜서로 일합니다
운명적인 사랑이라 믿은
요하네스(야곱 마트슈엔츠)에게
운디네는 어느 날 갑자기 실연을 당하죠
박물관 옆 단골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느닷없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그의 이별 선언에 당황한 운디네는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고는
나중에 다시 보자고 합니다
지금 일하러 가니까 삼십 분 후
자신의 일이 끝날 때까지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볼 때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당부하죠
'네가 나를 떠나면 난 널 죽여야 해'
떠나면 죽일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말에도
이기적이고 가벼운 사랑을 했던 그는 떠나요
박물관에서 베를린 도시 개발에 관한
강의를 하는 운디네는
창문 밖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요하네스를 내려다 보기도 하다가
일이 끝나자마자 종종걸음으로 카페로 가지만
그는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어요
다급하게 계단을 올라 카페 건물 안에서
요하네스를 찾지만 그는 보이지 않고
수조 속에서 뽀그르르 작고 나직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산업잠수사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가
그녀 앞에 나타나 박물관 강의 좋았다며
커피 한 잔 하자고 청하는 바로 그때
카페의 커다란 어항이 와장창 깨지고
쓰러진 두 사람은 물에 흠뻑 젖어듭니다
운디네에게 박힌 유리조각을 빼내 주는
크리스토프와 새로운 사랑이
뾰족한 운명처럼 시작되죠
베를린 교외의 댐에서
수중 용접 일을 하는 산업잠수사 크리스토프가
기차를 타고 오는 그녀를 마중하며
차창 밖에서 함께 따라 뛰는 모습에
설렘이 가득합니다
빨간 기차를 타고 떠나는 그녀를 배웅하며
차창 밖에서 함께 따라 뛰는 그가 선물한
잠수사 인형을 안고 운디네가 내다보는
차창 밖 풍경이 초록으로 싱그럽게 흘러갑니다
바닥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잠수사 인형을 붙이는 그녀에게
훔볼트 포럼 강의를 자신만을 위해 해달라고
똑똑한 말을 멋지게 한다며 응원하는
크리스토프는 사랑꾼이죠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스친
요하네스가 사랑의 변수가 됩니다
요하네스 곁을 지날 때
운디네의 심장 박동이 순간 멈칫하는 걸
크리스토프가 느끼게 되거든요
그날 밤 크리스토프로부터 전화가 오고
요하네스 때문에 몹시 화가 난 상태인 그가
운디네의 마음을 오해하며
그녀의 사랑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통화하는 사이에 비지스의 노래
'스테잉 얼라이브(Stayin' Alive)'가 흘러나오는데요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잠수를 하러
물속에 들어갔다가 크리스토프가
운디네를 구조하는 장면에서
심폐소생술을 할 때 크리스토프가
'스테잉 얼라이브' 노래를 웅얼거리며
그 리듬에 맞춰 가슴 압박을 했거든요
그날 이후로 운디네는
그 노래를 즐겨 듣게 된 거랍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달려간 운디네는
잠수 중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크리스토프가
전날 저녁 운디네와 전화 통화를 하기 전에
이미 뇌사 판정을 받았다는 비현실적이고
불가사의한 일과 마주합니다
크리스토프를 살리기 위해 운디네는
비극적인 운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죠
물의 정령답게 물속에서
변심한 옛 연인 요하네스를 죽이고
자신의 세계인 물속으로 돌아갑니다
그 순간 크리스토프는 기적처럼
운디네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납니다
운디네가 크리스토프를 살려낸 거죠
시간이 흘러 2년 후
한밤중에 느닷없이 물속으로 들어간
크리스토프의 눈물방울 끝에
비로소 운디네의 얼굴이 드러나고
두 사람은 재회를 합니다
잠수사 인형을 그의 손에 건네고
물밖의 현실로 돌려보내며
크리스토퍼가 물 위로 떠오를 때까지
운디네의 시선이 그를 따라 움직일 때
바흐의 피아노 콘체르토 선율이 함께 흐르죠
사랑하는 남자를 죽이는
비극적 운명 대신 자신의 방식으로
영원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안타깝게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크리스토프를 배웅하는 운디네의 시선에는
이해와 용서와 사랑이 깃들어 있어요
크리스토프는 물 밖으로 사라지고
운디네는 물 밑으로 점점 가라앉으며
화면은 이내 물로 가득 차오릅니다
그녀는 여기 있었으나 또한 없었고
거기 있으면서도 없기도 한 존재이지만
크리스토프의 진실한 사랑 덕분에
그녀의 사랑은 물거품으로 사라지지 않아요
운디네의 러브스토리는 새드엔딩이지만
복수가 아닌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진정한 해피엔딩입니다
사랑하는 크리스토프를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라며
자신의 세계인 물속에 붙잡는 대신
그의 세상인 물밖으로 자유롭게 놓아주어
크리스토프의 가슴에 남게 되는 거니까요
비극적 운명의 운디네 설화와
주인공 운디네가 박물관에서 해설하는
베를린 도시 개발의 역사를 알고 보면
한 걸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베를린의 18세기 궁전터에
지금은 21세기 미술관이 있습니다
지금 것과 옛 것이 다르지 않다는
주장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마치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듯이'라고
운디네는 박물관에서 강의를 하거든요
습지 위에 세워진 베를린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물을 빼냈다고 하는데요
"베를린을 자신의 역사를 지워나가는 도시'라고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말했답니다
'베를린의 파괴된 과거와 함께
아직 진흙 속에 남아 있는 신화와 전설들이
운디네 이야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운디네 신화의 순수함이
도시 개발의 물결에 물거품이 되어
지워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거나 운디네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신화와 다른 선택을 했고
물속으로 가라앉으면서도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을 놓음으로 사랑을 이루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