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57 한 나무의 두 잎사귀

나뭇잎이 흩날릴 때

by eunring

길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발밑을 나뒹구는 넙죽한 플라타너스 이파리에

봄과 여름과 가을이 함께 머무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합니다


어릴 적 철부지 마음에도

나뭇잎이 바람에 하나둘 흩날리면

마음의 슬픔도 우수수 함께 나풀대곤 했어요

철없는 마음에도 깃드는 슬픔과 애잔함이

알 수 없기도 하고 감당하기에도 버거워

우두커니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었죠


바람은 빙긋 웃을 뿐 대답해 주지 않았으나

그래도 바람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곤 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건 어린 마음이 애써 끌어안고 버티던

순간의 안타까움과 순간의 견딤이었을 테죠


발밑에 구르는 나뭇잎을 내려다보다가

어릴 기억 속의 나뭇잎의 수런거림을

가만히 떠올리다 보니

'우리가 보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영국 화가 존 컨스터블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무성하게 우거진 초록 빛깔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그린 화가로 유명한 그는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가랍니다

자연이 가진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내기 위해

무려 천 가지의 녹색을 사용하면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대기를

섬세하게 담아냈다는군요


살롱에 전시된 그의 그림

'건초 마차'를 본 프랑스 사람들이

'저 풍경화의 땅은 온통

이슬로 덮여있는 것 같다'고 감탄했답니다

풀이파리 위에 알알이 맺힌 이슬방울들이

눈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이나

영롱한 느낌을 준다고

평론가들은 말했다고 해요


그의 나무 그림을 본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건 그림이 아니라

영감(靈感)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자연을 사랑한 화가 컨스터블은

깊은 관찰과 오랜 습작을 통해

진실한 자연을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냈답니다


그림에 쏜살같이 흘러가는 순간을 담았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어느 하루도 서로 같은 날이 없고

단 한 시간도 서로 같은 시간이 없다

이 세상이 창조된 이래

한 나무의 두 잎사귀도 같아 본 적이 없다

진정한 미술이란 자연과 같이

서로 달라야 하는 것이다'


그림과 자연에 관한 멋진 말씀이지만

인생을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연이 순간마다 서로 다르듯

인생도 저마다 다른 것이고

한 나무의 두 잎사귀가 서로 다르듯

너와 내가 달라서 다채롭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같지 않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요


봄과 여름과 가을을 송두리째

한 얼굴에 담고 있는 나뭇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다가

먼지가 되어 흐트러지고 나면

세월의 한 순간이 또 저물어가겠죠

바라보는 모든 것이 순간의 빛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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