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58 단풍의 시간

알고 보니 대왕참나무

by eunring

우리 동네 가로수 중에

유난히 키가 크고 단풍이 곱게 물드는

멋진 키다리 나무가 있어요

봄이면 싱그럽고 풋풋한 연두로 피어나

초록에서 노랑으로 그러다 주홍으로

다시 붉디붉은 빛으로 물들어

바람에 휘리릭 떨어져 날릴 때는

단풍잎 비행기처럼 보이죠


그런데 재미난 것은

붉은 갈색으로 곱게 물든 나뭇잎을

가을바람에 대한 예의로 조금 흩날린 후에는

점점 오그라드는 갈색 이파리를 매달고

한겨울을 버티며 보낸답니다


바싹 말라 오그라든 잎사귀들이

겨우내 바스락 소리를 내며

시린 겨울바람을 막아주다가

봄이 오면 비로소 새 잎을 위해

자리를 내어준다고 해요


나무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혼자 속으로 비행기 나무라고 불렀어요

바람에 휘리릭 날아다니는 이파리가

내 눈에는 단풍잎 비행기처럼 보였거든요

친구님의 사진 속 키 훌쩍 큰 나무를 보니

그 나무가 바로 대왕참나무였군요


이름부터 진짜 나무라는 참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 활엽수인데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등이 있다죠


참나무는 참나무지만

공원이나 길가에 키다리 아저씨처럼

여름에는 무성한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이면 붉은 갈색 단풍잎을 선물하는

대왕참나무는 참나무 중에서 가장 키가 커서

이름도 대왕참나무랍니다


5월에 피는 대왕참나무 꽃은

꽃잎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번영'이라는 꽃말을 가졌다고 합니다

크고 길쭉한 나뭇잎은

윤기가 자르르 화려하고 얼핏 보면

단풍나무 잎처럼 보이기도 해요


대여섯 쪽으로 갈라진

잎사귀 끄트머리에 가시 같은 침이 있고

줄기와 가지 사이에 잔가지가

핀처럼 삐죽하니 튀어나와

핀오크(Pin Oak)라고도 불린답니다

쑥쑥 빨리 자라고 단풍이 곱게 물들고

공기 정화 능력을 타고나 공해에도 강해

공원수나 가로수로 환영받는 대왕참나무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라는군요


1936년 일제강점기에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고

부상으로 참나무 묘목 화분을 받았답니다

당시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월계수 대신 독일 참나무로 월계관을 만들고

부상도 참나무 묘목 화분으로 대신했다고 해요


손기정 선수는 묘목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기도 했다죠

배를 타고 돌아오는 40여 일 동안

어린 나무를 정성껏 보살펴

자신의 모교에 심었다고 하는데요


월계관 나무라고도 부르는 그 참나무는

독일인이 애정하는 참나무라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1813년 빌헬름 3세가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에게

철로 만들어 참나무 잎의 문양을 새긴

철십자 훈장을 수여하면서부터

참나무 잎이 승리와 영웅의 상징이었다고 해요


친구님의 사진 속 대왕참나무도

참나무의 일종이니 도토리 열매가 맺히는데요

키 크고 단풍 멋진 대왕참나무 도토리는

참나무 도토리들 중에서 가장 작고

동글동글 구슬처럼 앙증맞아요


'마음이 맞으면 도토리 한 알을 가지고도

시장을 멈춘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맞으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대왕참나무 단풍길을 걸으면

어떤 어려움도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을이 무르익어가듯

가을날 빗줄기 톡톡 굵어질

가을비에 핑그르르 떨어져 날리기도 하고

겨울 준비를 하며 더욱 곱게 물들어가는

대왕참나무 잎사귀들을 바라봅니다


그래도 난 떠날 거라며

가을여행 떠나는 잎새들의

나풀대는 발걸음은 발걸음대로

날아가고 싶은 맘 꾹 눌러 참으며

겨우내 나무를 따뜻하게 지켜주려고

바짝 붙어 손을 오그리며 안간힘을 쓰는

애처로운 잎새들의 손짓은 손짓대로

눈으로 어루만지며 다독입니다


나뭇잎들이 떠나든 남든

마음 가는 대로 어느 길을 가든

자신의 선택이니 부디 후회 없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록의 시간 357 한 나무의 두 잎사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