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22 위안과 희망과 영원의 빛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친구님의 여름 사진 속
노란 해바라기를 보며
고흐를 생각합니다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아요
더구나 그것이 불안이라면
더 깊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영화라기보다는
흔들리는 불안의 그림자 같았던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곰곰 되새겨봅니다
영화는 분명 영화인데
영화가 아닌 그림을 보는 것 같아요
그림에 담긴 고흐의 인생이고
고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입니다
잠시 고흐의 마음이 되어
고흐의 맑고 열정적인 눈으로
불안하고 위태로운 세상을 바라봅니다
고흐가 바라보는 은행나무 노란 잎이
너무도 선명해서 눈이 부셔요
화면의 불안한 흔들림까지도
고흐의 혼란스러운 내면인 듯
눈부시게 고독합니다
영화의 제목은 고흐의 작품
'슬픔에 찬 노인:영원의 문에서'의
바로 그 영원의 문이랍니다
어깨를 웅크리고 앉아
눈물 떨구는 그림 속 노인은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고 해요
고흐가 생 레미 요양병원에서
퇴원하며 그렸다는
'슬픔에 찬 노인:영원의 문에서'는
노인의 슬픔과 좌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그림자처럼
그려낸 것인지도 모르죠
그에게 삶은 치열한
전쟁터와 같았을 테니까요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귀를 자르기 이전부터 죽음까지를
고흐의 시선으로 따라가며
카메라는 불안한 걸음으로
거칠게 흔들립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그가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그를 향한 차갑고 매정한 시선이
안타깝게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의 삶은 외롭고
고독하고 불안했으나
외로움의 깊이만큼의 위안과
고독의 빛으로 응어리진 희망과
영원을 향해 흩나리는 위태로운 불안을
그림으로 남겨 보여줍니다
그의 인생이 아픈 만큼
그의 그림은 눈부시게 빛이 납니다
고갱과 다투고 난 후
화해와 사과의 의미로 왼쪽 귀를 잘라
'나를 기억해 그가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그에게 의사는
선물이냐 희생이냐 물어요
덩달아 문득 궁금합니다
선물이었을까요
희생이었을까요
자신이 곧 그림이라며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위안과 희망을 나누고 싶다는 그는
운명의 친구인 고갱이 떠나자
깊은 슬픔에 빠져듭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짬을 내
요양병원으로 형 고흐를 보러 온
동생 테오와 어릴 적에 그랬듯이
침대에 나란히 누운 모습이
애틋하고 애잔합니다
의사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을
동생 테오에게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자주 환영을 본다며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고
고흐는 하소연합니다
절벽에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이야기까지
동생 테오에게 털어놓아요
자신의 곁에는
늘 위협적인 영혼이 있다는 그는
신이 준 선물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기 위해 몰입합니다
고흐가 머무르던
프랑스 파리와 아를에서부터
생 레미 요양원과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그가 불멸의 작품에 몰입한 날들의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열정을 담은
영화는 슬픈 만큼 독하게 아름다워요
화구를 등에 지고
노란빛 속을 마구 달려가는 그는
겨울은 늘 자네에게 위험하니
따뜻한 날 더 강해지면 만나자는
고갱의 편지를 받기도 합니다
막히고 닫힌 환자복을 벗고
사제와 나란히 앉아
그림을 사랑하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타고난 화가라
다른 건 할 수 없다고 하죠
그의 그림이
불쾌하고 흉하다는 사제에게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같다는
그의 답에는 진심이 담겨 있어요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재능을 주신 것 같다고
씨는 뿌리지만 수확은 없어서
지구의 유배자나 순례자 같다는
그의 독백은 무채색입니다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동생 테오의 생각은 알고 싶다며
괜찮은 화가냐고 묻자 태오는 대답합니다
형은 괜찮은 화가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야~
맞는 말씀입니다
괜찮은 화가였으면
살아 있을 때 행복했을 텐데
위대한 화가이니 행복의 깊이만큼
늘 외롭고 불안했던 거죠
왜 그림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생각을 안 하기 위해서라고 답합니다
생각을 멈추면 느껴지고
자신이 보는 걸 공유하고 싶어서
다가올 시간 영원에 대해 생각하며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병 속에서 치유받을 때
천사는 슬픔 곁에 있다는 그는
약간의 광기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며
어이없는 사고로 생을 마감합니다
테오를 불러줘~
그렇게 세상과 작별할 때
평온하게 누운 그의 머리맡에
노란 해바라기가 함께 합니다
해바라기의 계절과
고흐는 잘 어울립니다
그에게 노랑은 밝고 명랑한
행복의 색이었으니
노란 해바라기가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아요
뜨거운 이 여름이 저물기 전
고흐의 해바라기가 시들기 전에
고흐를 위한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중얼거리듯이 해 봅니다
살아서는 가난하고 외로웠으나
죽은 후 사랑받는 화가
고흐의 삶과 죽음
그리고 열정과 고뇌의 빛을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을지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