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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821 엄마의 사랑꽃

엄마의 최애꽃

by eunring

엄마의 손끝에서 살랑살랑

배롱나무꽃들이 웃고 있어요

엄마의 사랑 듬뿍 받는

울 엄마의 최애꽃

배롱 메롱 사랑꽃입니다


어릴 적 기억 속

할머니는 꽃밭의 꽃들을

애지중지 아끼며 보살피셨으나

그 무렵 젊고 고우시던 울 엄마는

당신이 꽃이라 그러셨는지

꽃들과는 데면데면~


아침이면 반가운 인사 건네는

사랑스러운 나팔꽃도 노룩패스

큰 키에 늘씬 몸매 자랑하며

센 척하는 칸나언니도

그러거나 말거나

저녁이면 맛난 저녁 지으라는

분꽃의 속삭임도 듣는 둥 마는 둥~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 좀 보소~ 손 흔들어대는

사랑스러운 꽃들의 미소에도

엄마는 별 대꾸 없으셨어요

지금 생각하니 할머니의 꽃이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으셨던 듯~


할머니의 꽃들은

꽃밭에만 모여 있는 게 아니라

올망졸망 화분에도 있었어요

남국의 정열을 새하얗게 꽃 피우는

가시 촘촘 납작 선인장은

내 손바닥보다 커서

신기하고 재미났어요


그 모든 예쁜 꽃들을

보는 둥 마는 둥 스쳐 지나시던

울 엄마도 어느 순간 꽃들에게

사랑의 눈인사 건네며 귀를 기울이시는

어김없는 꽃할매가 되신 걸 보며

세월의 무상함이라 중얼거리다가

혼자 웃곤 합니다


그럼요~ 세상만사는

나이 따라 변하며 느리게 철들고

나잇살과 함께 눈과 귀는 무디어져도

마음의 눈과 귀는 한결 밝아져서

나이만큼 깊숙이 무르익어요


한때는 주홍빛 꽃등 켜며

치렁치렁 피어나는 능소화가

엄마의 여름꽃이었는데

거동이 불편해지시니

능소화길 나들이도 쉽지 않아서

엄마의 손이 가리킬 수 있는

배롱나무꽃이 엄마꽃이 되었어요

배롱 메롱 소리 내며 웃기도 하는

엄마의 재롱꽃이 거죠


여름은 초록이 대세라서

여름꽃이 드물긴 해도

배롱나무가 하늘하늘

아련한 꽃이파리 나부끼며

아쉬움을 달래주니

고맙고 다행입니다


엄마가 손으로 가리키시는

배롱나무의 초록 잎사귀와

형광핑크빛 꽃송이들이

작고 여리고 사랑스러워서

팔월에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여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초록 트리에 알알이 꽃분홍

꼬마전구들이 반짝이는 것 같아서

꽃이파리도 몽글몽글

마음도 덩달아 몽그르르


선물이 별건가요

그냥 이렇게 함께 하는 순간이

소중한 선물이고


입추 지나 가을을 몰고 오는

비님의 느린 발자국 따라

올해의 꽃송이들이 떨어지고 나면

내년에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까지도 덤으로 따라오는

애틋한 선물꾸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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