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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820 마음이 휘어질 때

휘묻이가 될까요

by eunring

빠르게 휘몰아치는

휘모리장단이란 게 있죠

마음에도 휘몰이장단이

마구 몰아치는 순간이 있어요


다행인 것은 마음이란

여리고 섬세한 꽃가지 같아서

휘어져 축 늘어지기는 해도

쉽게 부러지거나 꺾이거나

비스킷처럼 비스락 소리 내며

부서지지는 않아요


걷잡을 수 없이

마구 휘몰아치다가

제풀에 휘어져 늘어질 때

나무에 나뭇가지가 있듯이

마음에도 가지가 있을 테니

살살 다독이며 휘묻어 볼까요


스스로 어쩌지 못해 휘어진

마음의 여린 꽃가지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다독다독

마음의 꽃밭에 구부려 묻고

곱고 보드라운 흙으로 덮어 놓으면

단단하고 야무진 뿌리를

내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꽃가지가 휘어져 늘어질 때

반듯이 세우려 애쓰기보다는

휘어지는 대로 내버려 두다가

휘어진 가지를 땅에 묻는

휘묻이를 하면 되듯이

마음도 휘묻이를 해 보면 어떨까요


살아 있는 나뭇가지나

줄기의 일부를 휘어

흙이나 이끼 등으로 덮어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번식이

휘묻이인데요


덩굴성 꽃나무들이나

나무딸기 등을 번식시키고

독립시키는 방법이라

묻어떼기라고도 한답니다

묻어서 독립시켜 떼어낸다는

깊은 의미가 담긴 것 같아요


마음이 덩굴손을 뻗는

나무딸기는 아니지만

꽃가지 휘어져 늘어지듯이

마음기지 휘늘어질 때

마음도 휘묻이가 될까요

마음도 묻어떼기가 될까요


마음이 닿는 어딘가에

시들해진 마음을 덮고 다독이는

부드럽고 다정한 흙이 있을까요

살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상냥한 손이 있을까요


물론 있어요

내 마음의 구부러진 꽃가지를

묵묵히 안아 주는 내 마음의 흙

포근하게 쓰다듬는 내 마음의 손

나를 보살피는 흙과 손은

멀리 가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나를 부탁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휘어진 내 마음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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