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909 울며 웃던 그들의 꿈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채널을 돌리다가
'그것만이 내 세상'을 만납니다
후회 없이 울며 웃던 꿈을 노래하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영화의 제목이면서
가슴 먹먹한 엔딩곡이기도 합니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연기가 되는 이병헌 배우와
잔망스러움마저도 사랑스러운
박정민 배우의 웃픈 형제애를 만납니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엄마(윤여정)는
중학생 조하(이병헌)를 두고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만화방으로 달아나던 소년은
한때 동양 챔피언이었으나
지금은 체육관에서도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만화방 쪽잠 생활을 하다가
어쩌다 우연히 17년 만에 엄마를 만나고
난생처음 동생 진태를 보게 됩니다
자폐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휴대폰 게임 잘하고 라면도 잘 끓이고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서번트 증후군 아우 오진태(박정민)는
조하에게는 낯설고 어색한 존재일 뿐
17년 만에 느닷없이 만난 형제는
서로 달라도 너무나 다르죠
입만 열면 네 네~를 달고 사는 동생이
어이없고 불편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요
두 배우의 티격태격 형제애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감동과 눈물이 유쾌하고 애잔합니다
함께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길가의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도 없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 3악장'을 치는 진태를 보고 조하는 동생의 재능을 알게 됩니다
악보를 볼 줄도 모르고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는 진태는
피아니스트 한가율(한지민)의
연주 영상을 보고 통째로 외워서
연주를 할 만큼 재능을 타고 난 거죠
조하는 진태를 데리고 한가율을 찾아갑니다
캐나다로 갈 경비가 필요한 조하에게
진태를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게 도와주면
엄마가 상금의 절반을 준다고 했거든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으나 사고 후
피아노를 멀리하던 가율은 거절하다가
진태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모습에 진태의 재능을 인정하고 돕게 되는데요
연주는 잘했으나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진태는 콩쿠르에서 입상하지 못하지만
피아노를 치지 않던 딸이 진태를 통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을 본
가율 엄마(문숙)의 도움으로 진태는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부산으로 일을 하러 간다던 엄마가
사실은 형제에게 자신의 병을 숨기고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하가 엄마에게 캐나다로 떠난다고 하자
아픈 엄마는 스스로 이기적인 엄마라며
미안하다고 말해요
자신이 죽으면 진태는 복지원으로 갈 거라고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진태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너만 챙길게
너하고만 살 거다 못해 준 거 다 해줄게'
장애를 가진 동생 진태를 우선 챙겨야 했던
엄마의 고백이 가슴 아파요
캐나다로 떠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조하는
TV에 나오는 동생의 인터뷰를 보고
떠나려던 발걸음을 돌립니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을
형은 아우에게 말해주었고
아우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형 조하는 아픈 엄마와 함께
아우의 연주회장으로 갑니다
아픈 엄마와 형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케스트라와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을 연주하는
진태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갑자기 사라진 진태가
거리의 피아노에 앉아 작별의 인사를 건네듯
'그것만이 내 세상'을 연주하는 모습도
가슴 먹먹합니다
나란히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신호기 바뀌기 전에 미리
한 발 먼저 내딛으려는 진태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형 조하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아우 진태
조하와 진태 형제의 따뜻한 모습을
천국의 엄마가 흐뭇하게 지켜볼 것 같아요
낯섦과 불편함을 견디고
엄마 여읜 슬픔을 함께 나누며
비로소 가족이 된 거니까요
피아노를 배워본 적이 없는
박정민 배우는 피아노 연주 장면을 위해
반년 정도를 부지런히 연습했다고 하죠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가볍고도 진지하고
거칠면서도 따뜻한 츤데레 매력의 형 조하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아우 진태
조하와 진태 형제를 연기하는
두 배우의 진심 어린 눈빛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