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66 가난한 마음을 위하여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by eunring

아침에 새롭게 눈을 뜨면

아침마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고

또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마련된 오늘 하루가

차가워진 날씨와 상관없이 평온하기를

가진 것 없어 가난하지만 넉넉하고 여유롭게

다가오는 일들이 조금은 버겁더라도

웃으며 버티고 차분히 견뎌낼 수 있기를 바라는 작고도 야무진 마음입니다


얼굴과 가슴은 여인이고

새의 날개를 지녔으나 몸은 사자인

그리스 신화 속 괴물 스핑크스가 던진

웃픈 수수께끼가 생각납니다

'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나

아침에는 네 발이고 점심에 두 발이며

그리고 저녁에 세 발로 걷는 것은?'


테바이 길목을 지키며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지나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지고

수수께끼를 풀면 그대로 보내주지만

답을 맞히지 못하면 잡아먹었다는데요


오이디푸스가 나타나

'인간'이라고 수수께끼의 답을 맞혔다죠

사람은 어려서 두 손과 두 발로 기어 다니고

자라서는 서서 두 발로 걷다가

늙어서는 지팡이를 의지해야 하니 세 발이라는

오이디푸스의 대답에 스핑크스는 부끄러워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인데요


두 손과 두 무릎을 네 발 삼아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철부지 아이에서 자라

두 발로 반듯하게 걸을 수 있으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이가 들어 지팡이에 의지하거나

누군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지금 이 시간들이 고맙고 소중하고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며칠 전 산 아래 친구가

길에서 벽을 잡고 서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답니다

지나가는 어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지팡이라도 짚고 나오지 하시더랍니다


친구가 지나치다가 돌아서서

잡아드릴까~하니 그러라고 하시더래요

50 미터 정도를 쉬다가 걷다가

작은 요양원 건물 앞까지 모시고 갔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 엘리베이터까지

계단 몇 개를 더 올라야 하는데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계단 오를 힘이 없어서

한 계단씩 천천히 할아버지를 끌어올리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는군요


산 아래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쓸쓸하고 적막해졌어요

아침과 한낮이 지나면 저녁이 오듯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길이니까요


그날 친구는

가난한 이의 날 미사에 가던 길이었답니다

어딘지 부족하고 무언가 모자라서

마음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친구의 기도 곁에

잠시 내 마음도 내려놓았어요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지금

부지런히 걷고 더 깊이 돌아보고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해 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록의 시간 365 완연한 가을을 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