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67 가을이 저물어요
고요하고 적막하게
가을이 저물어요
고요하고 적막하게
가을이 뚝뚝 지고 있어요
빨갛고 노랗고 주홍으로 곱게 물들다가
낙엽비 되어 우수수 바람에 흩날리며
가을이 저물고 있어요
곱게 물든 나뭇잎 우수수 떨군 자리에
고요하고 적막한 열매를 매달고
우리의 가을이 저물어요
저 혼자 왔다가 저 혼자 서성이더니
저 혼자 일렁이고 저 혼자 곱게 물들어
저 혼자 나부끼고 저 혼자 흩날리다가
갈 때도 혼자 저만치 달아나고 있어요
아쉽고 안타깝지만 붙잡지 말고
훌훌 손 흔들며 그냥 보내주어야죠
눈부심으로 왔다가 쓸쓸함으로 저물고
스산함으로 부대끼고 고요함으로 잦아들며
그렇게 우리의 가을이 가고 있지만
간다고 아주 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저문다고 다 스며들지 않음을 알기에
흔적 없이 달아나고 사라진다고 해서
기억까지 모두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너도 알고 나도 잘 알고 있기에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건
그 무엇 하나 이 세상에 없고
마음 안에 가둘 수 있는 것도
무엇 하나 없음을 알고 있으므로
손을 놓고 마음을 비우며
바람결에 가을을 놓아 보내려 합니다
가야 또 오는 것이 인연이고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것이
우리의 계절이고 또한 세월이니까요
그 어디쯤 세월의 나뭇잎처럼 나부끼며
고요하고 적막한 우리 인생도
함께 흐르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