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99 제목이 백리향이랍니다
영화 '와일드 마운틴 타임'
고즈넉하고 순박하고 평화로운
아일랜드 풍광이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야생 들꽃이라는 제목 '와일드 마운틴 타임'은
백리향이라는 향기로운 이름을 가진 들꽃이래요
Time이 아닌 Thyme이라는 허브인 거죠
타임이라는 이름의 허브를
백리향이라 부르는데요
이름만으로도 향기가 저 멀리
백리까지 날아갑니다
분홍빛 작고 앙증맞은
사랑스러운 꽃송이들이 뿜어내는
고운 향기는 물론이고
초록 잎사귀를 손으로 비비면
손끝에 묻어나는 상큼한 향기가
아주 매력적이랍니다
산길을 걷다 보면
우연히 백리향이 발에 밟혀
나그네의 발끝에 묻은 향기가
백 리를 갈 때까지 오래 이어져
백리향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백리향의 꽃자매들을 통틀어
Thymus라는 속명으로 부르는데
향기를 뿜는다는 그리스어에서 온 거래요
타임(Thyme)이라 부르는
허브 식물의 꽃말이
용기라는군요
스코틀랜드에서 유래된
아일랜드 민요의 제목이기도 해서
안토니의 엄마가 부르시던 노래를
안토니를 짝사랑하는 로즈메리가 부르고
멀리까지 가는 들꽃 향기처럼
어설프고 서툴지만 순박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마음을 잡아당깁니다
언덕 위 삐딱하게 줄기를 뻗고 서 있는
커다란 나무의 모습이 고독하지만
아일랜드 특유의 거칠고
변덕스러운 날씨가 오히려 정겹고
몽그르르 번지는 색감이 로맨틱한데
배우들의 연기까지 매력적이고
등장인물들이 독특해서
톡톡 깨알재미를 터뜨려줍니다
안토니(제이미 도넌)와
로즈메리(에밀린 블런트)는
소꿉동무이자 이웃사촌이랍니다
아일랜드의 작고 예쁜 마을에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의 사랑이
삐딱 나무처럼 삐딱하고도
엉성한 만큼 애틋합니다
로즈메리는 어릴 적부터
안토니를 짝사랑해 온
일편단심 안토니바라기인데
로즈메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애에 서툰 청년 안토니는
무디고 덤덤하고 어리숙한 숙맥입니다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도
어설프고 서툴기만 해서
둘 사이는 어색하게
꼬이기만 합니다
안토니의 엄마는 오래전 세상을 떠나고
로즈메리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얼마 후
안토니의 아버지 토니(크리스토퍼 월켄)는
결혼할 생각 1도 없이 묵묵히
농장 일에만 진심인 아들이 야속해서
뉴욕에 사는 조카 아담(존 햄)에게
농장을 물려주겠다고
뜬금 폭탄선언을 합니다
안토니는 혼자 분을 삭일 뿐이고
농장을 소유하려는 사촌 아담은
아일랜드 농부가 되려는 마음으로
농장을 둘러보기 위해 마을을 찾아오지만
아일랜드 토박이인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요
장총을 쏘아대며 까마귀를 쫓고
자신이 가진 농장의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관심도 없고 계산도 하지 않으며
불쑥 이웃집 울타리를 열고
자신의 집으로 가야 하는
불편도 불평 없이 받아들이며
그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야생 들꽃처럼 살아가는
독특한 고집쟁이들의 모습이
은근 엉뚱하고 재미납니다
넌 착한 애야 착한 아들이었어
언젠가는 네 사랑이 찾아올 거야
네 삶의 터전인 이 들판에서~
아들을 의심하고 믿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버지는 아들과 화해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려
뉴욕으로 떠나 발레 '백조의 호수'를 보고
그다음 날 돌아온 로즈메리는
레인코트 입고 삐딱 나무 곁으로
까마귀 떼 쫓으러 간 안토니를 찾아와
갑자기 퍼붓는 비에 젖은
안토니에게 수건을 던져주고
좋은 때란 따로 없다고
마침내 고백을 건넵니다
아담에게서는 비누 냄새가 나서
싫다고 백합 향기가 나는 아담이 아닌
가축 냄새가 나는 안토니가 좋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죠
안토니 자신이 꿀벌이고
로즈메리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며
집 앞에서 찾았다는 금반지를
목에 걸고 있다가 건네며
운명은 우리가 정하는 거야
한번 부딪쳐보자~
안토니도 드디어 용기를 냅니다
아가씨 같이 갈래요~
영화의 중간에서
로즈메리가 부르는 노래를
엔딩에서 안토니가 부르다가
로즈메리에게 함께 부르자고 청하는데요
헤더나무 곁으로 백리향을
따러 가자는 노래 가사가
순박하고 정겨워서
서툰 대로 흥얼거리게 됩니다
영화가 좋은 만큼
싱어송라이터인 에드 시런이 부르는
노래도 듣기에 괜찮습니다
야생 들꽃의 향기가 잔잔히 흐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