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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381 무지개를 찾아서

인생이 건네는 선물

by eunring

친구가 산길을 걷다가

건너편 아파트에 아련하게 걸린

무지개를 보았다고 사진으로 보내줍니다

연한 무지개지만 잘 보면 보인다는데

처음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무지개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바라보니

비로소 보입니다


세상 귀한 모든 것들은

한참을 보물 찾듯 들여다보며

애써 눈으로 찾아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걸어 제 발로

내 눈에 들어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보이는 거죠


찾았다~ 무지개가 아니라

보인다~ 무지개인 걸까요?

무지개가 보인다고

친구에게 톡 문자를 보냈는데요

친구의 대답이 ~이랍니다


말이라는 게 때로 번잡하고

글이라는 것이 때로 덧없고

톡톡대는 문자도 때로 부질없으니

잠시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도 따라 응~으로 마무리


그런데요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해도

아침저녁으로 안부 문자를 나누다가

응~으로 마무리하고 나니 왠지

마음에 궁금함이 남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친구가 목소리를 보내옵니다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발이 미끄러져

응급실까지 다녀왔다며

목소리에 고단함이 한가득입니다


깁스를 해서 톡 문자 대신

목소리 안부를 전하면서도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통화도 짤막하게 마무리합니다


무지개를 보내주더니

뒤이어 깁스 소식을 보내온 친구에게

마음은 한달음에 달려가지만

발은 현실에 묶여 있어요


구름이 아니라서 흘러가지 못하고

바람이 아니라서 날아가지 못하고

햇살이 아니라서 친구의 창가에

눈부시게 내려앉지도 못합니다


느닷없이 응급실에 실려가

온갖 검사로 힘들고 버거웠을

친구의 얼굴을 생각하다가

문득 '응급실'이라는 노래가 떠올라서

혼자 흥얼거려 봅니다


'이 바보야 진짜 아니야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몰라'

어제는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무지개를

오늘은 친구의 깁스 소식을 보내주는

한 걸음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

내게 건네는 위로의 노래 같아요


'너를 가진 사람 나밖에 없는데

제발 떠나가지 마

너 하나만 사랑하는데

이대로 나를 두고 가지 마'


노래 가사처럼 인생은 그렇게

때로는 기쁨의 선물을

그러다 아픔의 선물도 덥석 건네며

그래도 나 하나만을 사랑하는 거라고

또 그렇게 바보처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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