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27 부드러운 떨림과도 같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by eunring

눈이 부시게 화사한 빛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그림을 배경으로 사르르 눈웃음 건네는

하양이 친구님의 고운 모습을 보며

오늘이 일요일인가 생각하다가

멋쩍게 혼자 피식 웃고 맙니다

일요일이 아니라 연휴 끝날 오후거든요


빛을 그림에 담기 위해 무수히 점을 찍는

점묘법의 창시자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그림이 걸린 키다리 아저씨 카페에 앉아

연휴를 마무리하는 친구님의 모습이

넉넉하고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친구님 뒤에 펼쳐져 있는 쇠라의 그림을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무수히 많은 색점들이 보여요

수많은 색점들이 밤하늘의 뭇별들처럼 모여

눈부시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낸

점묘법의 대표작품이랍니다


쇠라는 2년 동안 치밀하게 색을 계산해서

무수히 많은 점을 찍고 찍고 또 찍어

수백만 개의 점으로 빛을 표현했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여인이 쓰고 있는 양산의 고운 빨간빛과

풀밭 위에 앉아 있는 소녀의 갈색 머리카락과

양산을 쓴 여인의 붉은 모자의 빛을

색채를 섞지 않고 점을 찍어 그려낸 거죠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그림 속에서

평온하고 여유롭게 휴일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시 정지된 듯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무표정하지만

부드러운 떨림과도 같은 무수한 색점들이

소리 없이 고요한 설렘을 줍니다


파리 센 강의 섬 그랑드 자트에

소풍을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제각각이죠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엄마도 있고

무심히 혼자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잔뜩 부풀린 치마를 차려입고

원숭이와 산책 중인 여인도 있고

나무에 편안히 기대어 앉아

우두커니 강물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어요


계층과 직업이 다른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옷차림으로

적당히 거리 두기를 하며 커다란 캔버스 가득

한가롭게 소풍을 즐기고 있는데요


2년여 동안 쇠라는

아침부터 그랑드 자트 섬으로 가서

스케치를 하며 그림을 연구했답니다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그림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수수께끼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조르주 쇠라는 서른두 해 짧은 생을 사는 동안

거의 파리에서 지내며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반듯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과묵하고 차분한 화가였다고 해요


예술가라면 흔히들

한 열정과 두 격정은 기본 장착하고

괴팍함과 자유분방함에 기행까지

서슴없이 내세우기도 하는데

쇠라는 오히려 차분하고 꼼꼼하고

정확하고 분명한 사람이었답니다


하양이 친구님의 정다운 눈웃음 뒤에서

쇠라의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처럼

지금 우리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거리 두기의 일상 속 일시 정지된

비현실적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문득 씁쓸해집니다


언젠가는 보고픈 친구님들과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카페 창가 자리에 왁자지껄 모여 앉아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맘껏 나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근두근~


지금 이 순간의 설렘이

스팀 밀크처럼 부드러운 떨림으로

평온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 위에

잔잔히 아롱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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