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67 치자꽃 향기
우리 집 꽃차례
봄비에 꽃 이파리 후루루 떨어지고
산벚꽃 분홍빛이 곱게 물들며
연두로 차오르는 산빛에 어우러진다는
산 아래 친구의 봄비 다음날 안부에
뒷베란다로 나가 먼 산을 바라봅니다
산이 아스라이 눈에서 멀어
연분홍 산벚꽃 수채화처럼 번지는
설렘 가득 고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른아른 연둣빛 산만 눈에 들어옵니다
다시 앞 베란다로 나가
저만치 한강을 바라봅니다
강 건너 언덕을 물들이던 노릇노릇 개나리도
이미 초록잎에게 자리를 내어준 듯해요
천천히 눈길을 거두어들이다가
바로 앞 길 건너 초등학교 운동장 느티나무가
연초록으로 풋풋해지는 모습에
절로 마음이 환해집니다
초등학생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게 자라는
느티나무 잎새들에게 미소 건네다가
우리 집 베란다로 눈길을 거두어들입니다
몇 개 되지 않는 화분 사이로
새로 들어온 꽃치자와 인사 나눕니다
똘망한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부풀어 터질 것 같아요
꽃차례라는 말이 있어요
꽃이 줄기나 가지에 붙어 있는 상태인데요
꽃이 나는 순서와 모양을 말한답니다
계절마다 꽃이 피어나는 순서를
꽃차례라고 말하기도 하나 봅니다
봄날을 채우는 꽃들이 피어나는 순서는
붉은 꽃 하얀 꽃 그리고 노란 꽃이라는군요
그런데 피어나는 봄꽃들이 반드시
그 순서를 지키는 건 아닌가 봐요
꽃들도 가끔은 급한 마음에
먼저 고개를 내밀기도 하나 봅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
하얀 커피 꽃을 시작으로
그다음 붉은 제라늄과 붉은 시클라멘
미니미니 한 분홍 애기 영산홍
그리고 청순한 꽃치자가
알뜰하게 꽃망울 머금고 있는데요
제라늄 빨강 꽃잎들이
치자꽃을 향해 살포시 고개 숙인 모습이
애틋한 작별의 인사 같아요
나는 이제 떠난다~며
빈자리를 부탁해~말하는 듯
고운 꽃잎들을 뚝뚝 떨구고 있어요
재즈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치자꽃 사랑이 생각납니다
언제나 새하얀 치자꽃을 머리에 꽂고
온몸으로 영혼이 녹아든 노래를 불렀다죠
제 몫을 다하고 시들어 떨어지는
제라늄의 붉은 마중을 받으며 부풀어 오르는
순백의 꽃망울이 장미 봉오리를 닮았어요
그윽하고 달콤하게 어우러질
치자꽃 향기를 미리 상상하며
오늘은 재즈를 들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