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66 봄날에 피고 지는

꽃등인지 꽃비인지 꽃눈인지

by eunring

소리도 없이 저 혼자 부지런히

이런저런 애틋한 사연들을 끌어안고

피고 지고 연이어 또 피어나는

봄꽃 마중도 야무지게 못하다가

봄비 소식에 마음이 아련해졌어요


아침에 엄마랑 아파트 안마당

천천히 휘이 한 바퀴 돌다가

바람에 살랑이는 벚꽃비도 맞고

어느새 활짝 피어난 라일락도 만나고

애기 손톱처럼 꽃망울 맺히기 시작하는

분홍 하양 영산홍도 반갑게 마중합니다


뚝뚝 지는 목련 꽃송이도 잘 가라 배웅하며

피어날 때 더없이 고운 모습이었으니

떨어질 때 다 풀어져 헤픈 모습쯤이야

너그러이 눈감아 주자고 생각하는데

다 때가 있다고 엄마가 중얼거리십니다

때가 되니 꽃이 피고 때가 되면 꽃도 진다는

엄마의 혼잣말씀이 왠지 뭉클합니다


벚꽃 이파리가 내려앉아 곱게 물든

연분홍 마스크를 쓰신 엄마랑

동네 한 바퀴 돌며 나풀나풀

벚꽃비 맞고 싶은 마음은

아쉽지만 고이 접어두고

묵묵히 혼자 걷기로 합니다


연초록 어린잎이 풋풋해지는 가로수 따라

꽃 같은 연등이 둥실둥실 피어나 있어요

아기 부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빨강 노랑 파랑 꽃등이 미리 전해주는

한때는 엄마랑 나란히 걷던 길을

이제는 혼자 걸어봅니다


그 무엇이든 너무 아쉬워 말라는 듯

벚꽃비 흩날리는 길가에 잠시 멈춰 서서

수북이 쌓인 고운 분홍 이파리들을

스마트폰에 담으려다 순간 멈칫했어요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문구 아래 버티고 있는

CCTV 작동 중이라는 글자에 식겁해서

부질없이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이파리들은

사진 대신 마음에 분홍으로 간직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님의 벚꽃 안부가 반갑게 날아듭니다


사랑스러운 꼬맹이 소녀 이솜이가

벚꽃비 맞으며 나비처럼 나풀대다가

어린이집에 그만 늦었다는

귀여운 봄소식에 미소가 맺힙니다


그런데요~귀요미 이솜이는

벚꽃비를 분홍 눈이라고 한다는군요

어른이 눈에는 우수수 꽃비인데

아가들 눈에는 나풀나풀 꽃눈이랍니다


꽃등인지 꽃비인지

벚꽃비인지 벚꽃눈인지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꽃등 아래

바람에 흩날라는 벚꽃 이파리를 놓아보내며

하염없이 봄날의 하루가 피고 지고 또 저물어요


예수님과 부처님은 절친이신가 봐요

고운 봄날의 꽃비 속에서

예수님은 사랑으로 부활하시고

꽃 진 자리 연초록 잎새들 사이로

또박또박 아기 부처님이 오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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