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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l 19. 2023

초록의 시간 587 여름 손님

지금 다녀갑니다

금방 파랗다가

금세 꾸무럭하다가

빗방울 톡톡 흩뿌리다 말다

미처 우산을 펼 사이도 없이

키다리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지고 환해집니다


참 변덕스러운 여름 손님

그 이름은 소나기

그리고 폭우

지금 다녀갑니다


빗줄기 다녀간 자리

선명한 분홍빛 나리꽃이

유난히 고운 얼굴로 웃고 있어요

나리꽃을 향한 내 마음의 눈도 함께

빗물에 씻겨 맑아지고

햇살 머금어 밝아진 까닭일까요


소나기 지나간 자리를 비집고

둥그런 무지개 떠오르자마자

친구가 톡 인사를 보내옵니다

하늘이 환해져서 좋다~

우리의 날들도 환했으면 좋겠다~


제 답은 이렇습니다

그럴 거야~

맑고 환할 거야~

지금도 이렇게 환하듯이


여름 손님 반갑지 않다지만

세차게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도

그치지 않는 매미 울음처럼

빗줄기보다도 더 줄기차게 이어지는

마음의 빛줄기가 있으니까요


느닷없는 소나기도

눈앞을 가리며 쏟아지는

매정한 빗줄기도

그래도 우리에게 오는 손님이니


우리에게 오는 그 무엇이든

반겨 맞이하지는 못하더라도

찌푸린 눈살 환하게 펴고 배웅하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는 여름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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