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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10. 2023

초록의 시간 615 핑크공주의 가을 이야기

가을 빗 가을 부채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늦가을 낙엽 수북이 쌓인 길을

고즈넉한 낭만 바스락 아대

한바탕 수다와 함께 몰려 지나간 자리에

분홍 빗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어느 핑크공주님이 손에 들고 가며

머리를 예쁘게 빗으며 꽃단장하다가

친구들과 까르르 깔깔 웃다 그만

떨어뜨리고 갔나 봅니다


아닐 수도 있죠

품에 소중히 안고 가던

애착인형의 머리를 빗어주다가

친구들 따라 우르르 뛰는 바람에

슬며시 놓쳐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아이들 까르르 소리에

낙엽들도 파르르

아이들 뛰는 걸음 따라

낙엽들도 핑그르르

사랑스러운 베이비핑크

머리빗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철이 지나 쓸모없게 된 물건이나

사랑을 잃은 여인을 비유하는

가을 부채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중국 한나라 반첩여의 시에

가을 부채가 나오죠

'문득 두려운 가을이 다가와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밀어내니

가을 부채는 옷장 안에 버려지고

사랑도 끊기는구나~'


낙엽 수북이 쌓인 길바닥에

홀로 떨어져 있는

어느 핑크공주의 가을 빗이

아침 산책길에 내 마음을 따라와

온종일 바스락 소리를 냅니다


핑크공주는 가던 길 되돌아와서

분홍 빗을 주워 갔을까요

아니면 학교 앞 문구점에서

새 빗을  들고는

룰루랄라 가던 길 갔을까요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 들으며

핑크공주의 가을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입니다

입동 지났으니

어느새 겨울 느낌 성큼 다가서고

핑크공주의 가을 이야기에도

금방 첫눈이 내릴 것만 같습니다


누구든

그 어떤 물건이든

가을 부채 신세가 아니기를~

작아도 소중한 사람이 되고

작을수록 더 귀한 물건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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