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23 그냥 두지 그랬어
맘껏 쏘다니도록
길가에 흐트러져 나풀대는
늦가을 낙엽들을
빗자루로 가지런히 곱게 쓸어 모아
소복이 쌓아둔 그 사람은
아마도 낙엽이 추울까 봐
낙엽들이 흩어지면 외로울까 싶어
다정히 서로 기대며 온기 나누고
도란도란 정담도 나누라고
한데 모으고 또 모았을 테죠
그러나
그냥 두지 그랬어요
맘껏 나풀대며 쏘다니도록
냅두지 그랬어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나는 선 하나 없는 하얀 도화지인데
촘촘히 가로줄과 세로줄이 엮이고 모인
첩첩산중 모눈종이 같은 세상살이에 갇혀
갑갑하다는 생각~
낙엽들도 그러지 않을까요
파르르르 이왕 땅으로 떨어진 김에
바람을 친구 삼아 실컷 날아오르고
맘대로 이리저리 쏘댕기라고
그냥 두지 그랬어~
낙엽들이 투덜대며
낙엽윽 취향도 존중해 달라고
종알거리는 듯
봄에는 새로이 태어나느라
눈부신 설렘으로 벅차고
여름에는 초록으로 무성해져
길고 넉넉한 그림자 드리우느라
온마음과 정성 다해 애썼고
가을에는 붉게 물드느라 버거웠다가
땅바닥에 떨어져 구르며 힘들었으니
이왕 뚝 떨어져 나온 김에
세상 구경 좀 하라고
그냥 두지 그랬어~라구요
그러나 차마 손 내밀어
마구 흐트러뜨리지 못합니다
내가 뭐라고 덥석
낙엽의 인생에 손을 들이밀어요
낙엽들 중에도 E가 있고 I도 있을 텐데
내 맘대로 낙엽의 생각을 짐작한다는 건
이미 선을 넘은 거니까요
그래요 이왕 모여 있으니
사이좋게 떠들며 재미나게 놀라고
그러다 바람 한 줄기 몰아치면
미련 없이 제각기 갈길 가라고
무심한 듯 그냥 지나칩니다
나도 내 갈길을 갈 테니
너희들도 너희 갈길을 가렴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며
작별의 손짓과 미소 나누자
우리들의 차가운 겨울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