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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20. 2023

초록의 시간 623 그냥 두지 그랬어

맘껏 쏘다니도록

길가에 흐트러져 나풀대는

늦가을 낙엽들을

빗자루로 가지런히 곱게 쓸어 모아

소복이 쌓아둔 사람은

아마도 낙엽이 추울까 봐

낙엽들이 흩어지면 외로울까 싶어

다정히 서로 기대며 온기 나누고

도란도란 정담도 나누라고

한데 모으고 또 모았을 테죠


그러나

그냥 두지 그랬어요

맘껏 나풀대며 쏘다니도록

냅두지 그랬어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나는 선 하나 없는 하얀 도화지인데

촘촘히 가로줄과 세로줄이 엮이고 모인

첩첩산중 모눈종이 같은 세상살이에 갇혀

갑갑하다는 생각~


낙엽들도 그러지 않을까요

파르르르 이왕 땅으로 떨어진 김에

바람을 친구 삼아 실컷 날아오르고

맘대로 이리저리 쏘댕기라고

그냥 두지 그랬어~

낙엽들이 투덜대며

낙엽윽 취향도 존중해 달라고

종알거리는 듯


봄에는 새로이 태어나느라

눈부신 설렘으로 벅차고

여름에는 초록으로 무성해져

길고 넉넉한 그림자 드리우느라

온마음과 정성 다해 애썼고

가을에는 붉게 물드느라 버거웠다가

땅바닥에 떨어져 구르며 힘들었으니

이왕 뚝 떨어져 나온 김에

세상 구경 좀 하라고

그냥 두지 그랬어~라구


그러나 차마  내밀어

마구 흐트러뜨리지 못합니다

내가 뭐라고 덥석

낙엽의 인생에 손을 들이밀어요

낙엽들 중에도 E가 있고 I도 있을 텐데

내 맘대로 낙엽의 생각을 짐작한다는

이미 선을 넘은 거니까요


그래요 이왕 모여 있으니

사이좋게 떠들며 재미나게 놀라고

그러다 바람 한 줄기 몰아치면

미련 없이 제각기 갈길 가라고

무심한 듯 그냥 지나칩니다


나도 내 갈길을 갈 테니

너희들도 너희 갈길을 가렴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며

작별의 손짓과 미소  나누자

우리들의 차가운 겨울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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