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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20. 2023

초록의 시간 653 못난이 감귤 소녀

주근깨 감귤 소녀

주근깨 송송 박힌

못난이 귤을 봅니다

못난이 주근깨 감귤소녀

빨강머리 ~이라고 부르려다가

주홍얼굴 앤~이라고

살짝 바꿔 불러봅니다


유기농 노지 귤이래요

그래서인지 참 단단하고

싱싱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주근깨 송송 고집쟁이 초긍정소녀

빨강머리 앤을  닮았어요


건강한 맛이라고 하면

대개는 맵지 않아 밍밍하고

짠맛이 덜해 싱거워서

감칠맛이 부족한 맛인데요

못난이 주근깨 귤은

까뭇까뭇 주근깨 상관없이

상큼하고 달콤하고 싱싱한 맛이니

건강하고 맛있는 귤인 거죠


밀감과 귤을 하나로 묶어

감귤이라고 한답니다

밀감이라는 이름도 정겨워 좋고

귤이라는 이름도 부드러워 좋은데

밀감과 귤 둘을 합쳐놓은 감귤은 

보들보들한 느낌이라

두 배로 더 좋아요


겨울 재미 중 하나가

흰 눈 펑펑 내리는 날

무릎담요 어깨에 두르고 앉아

감귤 하나둘 까먹는 건데요

새콤 달콤 감귤을 까먹으며

겨울날 시리고 차가운 시간들을

행복하게 누려봅니다


빨강머리 앤이 말했잖아요

'행복한 나날이란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소소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이라고


그러고 보면 빨강머리 앤이야말로

단단하고 야무지고 건강한

유기농 소녀인 거라고 말하면

아마도 앤이 이렇게 대꾸하겠죠

'흥칫뿡 ~

주근깨 따위 신경 쓰지 않아

상상 속에서 아름답게 꾸미면 되니까'


유기농이라는 말이 붙는

채소나 과일 들은 대개 거칠고

껍질이 제법 단단한데요

감귤 껍데기의 까뭇한 주근깨들이

빨강머리 앤처럼 긍정 마인드 휘날리며

야무지게 자신을 지킨 흔적 같아서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유기농이란

농약이나 화학비료 등을 쓰지 않고

퇴비나 천적 등을 이용한 

자연 친화적인 농사 방법인데요

최소 3년 이상이어야 한답니다

시간과 정성이 최소 3년이니

노력이 그만큼 필요한 거죠


그런데요

감귤을 고구마 굽듯이

구워 먹으면 맛있다고 해요

껍질째 반으로 잘라서

에어프라이어에 십 분 정도 구우면

색다른 식감과 독특한 단맛이 된다니

일단 해봐야겠어요

추운 겨울에는 무엇이든

따뜻한 것이 좋으니까요


새하얀 겨울 풍경 속에서

무릎담요 촤라락 펴 어깨에 두르고

감귤 달콤하게 구워 먹으며

주근깨 소녀 빨강머리 앤처럼

지금 이 순간을 즐겨봅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소녀

앤이 이렇게 말했거든요

'무언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즐거움의 절반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기다리는 기쁨이란 건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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