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54 쉼표의 계절
빗자루도 애썼다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날
잔뜩 웅크리고 길을 걷다 보니
빗자루도 비스듬히 쉬고 있어요
흩날리는 낙엽을 쓸다 지친 몸
간신히 추스르고 새하얀 눈길 쓸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입니다
바쁜 가을날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는 속담이 있는데
요즘 부지깽이는 찾아보기 어렵고
흩날리는 낙엽 쓸어 모으느라
여기저기서 빗자루들이 열일을 했죠
하얀 눈 쌓이는 겨울날에는
얼어붙기 전에 쓸어 모으느라
또 부지런히 덤비는 게
기럭지 기다란 빗자루인데요
햇살이 사르르 쌓인 눈 녹여준 덕분에
잠시 잠깐 빗자루도 쉬어갑니다
키다리 빗자루 위로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노닥노닥
그나마 한가로운 쉼이 되었어요
겨우내 눈길을 쓰느라
에효~허리야 할 것 같아요
빗자루에게도 허리가 있다면~
길냥이도 밥보다
따사로운 볕이 더 좋은가 봐요
햇볕 가득한 아파트 담벼락에
길냥이 한 마리 엄청 추운지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애처롭게 몸을 바짝 붙이고 있어서
움직임을 잊은 그림 속 고양이 같아요
차갑게 스쳐가는 바람자락 덕분에
참 안쓰러운 납작 그림이 되어버렸어요
등 따습고 배 부르게 쉬면
더도 덜도 말고 딱 좋은
아늑한 쉼표의 계절이지만
쉬지 못하고 여전히 종종걸음으로
하루의 길모퉁이를 스치고 지나는
시린 겨울 풍경과 그 속의 사람들에게
금싸라기 겨울햇살의 눈부심을 모아
따사로움 한 움큼 건네고 싶어요
빗자루도 애썼다
길냥이도 애썼다
우리 모두 참 많이 애썼다~고
중얼거리며 쓰담쓰담
셀프 위로타임
빗자루도 쉬어라
길냥이도 잠시 쉬어라
우리 모두 함께 나란히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따사로운 볕자락 부여잡으며 쉬자~고
중얼거리며 두 팔 축 늘어뜨리고
셀프 휴식타임
지금은
부지런한 빗자루도
고개 떨구고 잠시 쉬어가는
쉼표의 계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