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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21. 2023

초록의 시간 654 쉼표의 계절

빗자루도 애썼다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날

잔뜩 웅크리고 길을 걷다 보니

빗자루도 비스듬히 쉬고 있어요

흩날리는 낙엽을 쓸다 지친 

간신히 추스르고 새하얀 눈길 쓸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입니다


바쁜 가을날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는 속담이 있는데

요즘 부지깽이는 찾아보기 어렵고

흩날리는 낙엽 쓸어 모으느라

여기저기서 빗자루들이 열일을 했죠


하얀 눈 쌓이는 겨울날에는

얼어붙기 전에 쓸어 모으느라

또 부지런히 덤비는 게

기럭지 기다란 빗자루인데요

햇살이 사르르 쌓인 눈 녹여준 덕분에

잠시 잠깐 빗자루도 쉬어갑니다


키다리 빗자루 위로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노닥노닥

그나마 한가로운 쉼이 되었어요

겨우내 눈길을 쓰느라

에효~허리야 할 것 같아요

빗자루에게도 허리가 있다면~


길냥이도 밥보다

따사로운 볕이  좋은가 봐요

햇볕 가득한 아파트 담벼락에

길냥이 한 마리 엄청 추운지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애처롭게 몸을 바짝 붙이고 있어서

움직임을 잊은 그림 속 고양이 같아요

차갑게 스쳐가는 바람자락 덕분에

참 안쓰러운 납작 그림이 되어버렸어요


등 따습고 배 부르게 쉬면

더도 덜도 말고 딱 좋은

아늑한 쉼표의 계절이지만

쉬지 못하고 여전히 종종걸음으로

하루의 길모퉁이를 스치고 지나

시린 겨울 풍경과 그 속의 사람들에게

금싸라기 겨울햇살의 눈부심을 모아

따사로움 한 움큼 건네고 싶어요


빗자루도 애썼다

길냥이도 애썼다

우리 모두 참 많이 애썼다~고

중얼거리며 쓰담쓰담

셀프 위로타임


빗자루도 쉬어라

길냥이도 잠시 쉬어라

우리 모두 함께 나란히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따사로운 볕자락 부여잡으며 쉬자~고

중얼거리며 두 팔 축 늘어뜨리고

셀프 휴식타임


지금은

부지런한 빗자루도

고개 떨구고 잠시 쉬어가는

쉼표의 계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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