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ring Jan 16. 2024

초록의 시간 675 오늘의 재미

블루사파이어의 미소

어느 젊은이의 로망은

트레이닝복에 속털 보송 슬리퍼 신고

두툼 패딩 무심히 툭 걸쳐 입고

집 근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는 거라고 해요


좀 더 나이가 든 어느 지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조르르 명품으로 떨쳐 입고

손에는 명품백 발에는 명품구두

가깝더라도 차를 운전해

유명 백화점에 들러

우동 한 그릇 먹는 게

일상의 재미라고 합니다


그럼 나는?

이도저도 아닌 내가 누리는

오늘 하루의 재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집 근처에 조그만 백화점도 있고

대형마트도 있어 걸어갈 수 있으나

어리지도 젊지도 않으니

트레이닝복 차림은 어설프고

털보송이 슬리퍼는 곤란합니다

언 길에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까요


능력이 안 되니

명품옷은 못 입습니다

명품백도 못 들고

명품신발도 못 신어요

꽃단장도 부지런해야 하는 것인데

가진 게 별로 없고 게을러서

보석 치장도 물론 못 합니다


그럼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

툭하니 누가 묻는다면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으니

그냥 웃거나 묵묵부답으로

스리슬쩍 고개 넘듯 넘기는 수밖에요


가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의 재미

오늘의 즐거움은 어디 있을까

찬찬히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렇군요 우리 집에는

향기로운 블루사파이어가 있어요

보석이 아니니 화려하지 않으나

야리야리 곱고 애틋하게

나를 향해 웃고 있어요


블루사파이어를 바라보다가

좀 심심하다 싶을 때면

바로 이때다~라는 듯

깨톡문자가 또르르 날아옵니다

친구야 뭐 하니

노올자~


그렇습니다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사랑스러운 블루사파이어 곁에 두고

햇볕 따사로이 스며드는 창가 소파에

세상 편한 자세로 비스듬히 기대앉아

맥락 없는 수다를 톡톡거릴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그 또한

오늘의 재미고 즐거움입니다


문밖을 나서면 멀리 가지 않아도

커피집이 있고 빵집도 있으니 즐겁고

조금 더 걸어가면 영화관도 있으니

언제든 가볼 수 있어서 재미납니다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 아닐까요

지속가능성이란 말을

이렇게 써도 좋을지 모르지만

좋은 건 자주 많이 쓰는 게

더 좋으니까요


지속가능한 친구와 함께

지속가능한 깨톡 수다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고 해요


말하고 나니

이솝 우화가 생각납니다

여우의 신 포도

그죠? 맞죠




작가의 이전글 초록의 시간 674 상냥함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