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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an 29. 2024

초록의 시간 685 달걀을 깨뜨리며

태어나고 또 태어납니다

달걀이 완전식품이라기에

달걀을 먹다 보면 완전인간에

한 걸음 뽀짝 다가설 수 있을까 싶어

매일 달걀을 챙겨 먹습니다


달걀 프라이가 쉽기는 해도

늘 제멋대로 모양이 흐트러지고

달걀찜 역시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그다지 예쁘지 않아 맘에 안 들고

물에 퐁당 넣어 삶는 달걀이

가장 쉬운 듯해도 껍질이

매끈하게 벗겨지지 않을 때가 많아

은근 까다롭고 번거로우니

게으르고 솜씨도 별로인

결론은 구운란으로 땅땅~


구운란 한판을 앞에 두고는

하얀 달걀은 하얀 닭이

노란 달걀은 노란 닭이 낳았다지

유전자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고

부질없이 중얼거리다가 뜬금없이

철부지 중2 시절로 타임슬립~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에도

무서운 중2병이라는 게 있었죠

책가방에 한가득 무협지들을 챙기고

수업시간마다 책상 위에는 교과서

책상 밑에는 소설책을 펴놓고

위태로운 만큼 스릴 만점인

이중생활의 아찔한 즐거움을 누리

헤세의 '데미안'에 빠져들던

그 시절이 문득 생각나

피식 웃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가며

딴짓과 딴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오면

도시락을 열자마자 하얀 쌀밥 위에서

하양 노랑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달걀 프라이를 보고는

순간 깊이 반성을 하곤 했어요


달걀 프라이에 스며 있는

말수 적으신 엄마의 사랑과 함께

알은 세계다~라는

데미안의 구절이 떠올라

잠시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아침마다 달걀을 깨서

달걀 프라이를 해 주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열심 공부를

그러나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하니까요


나 자신의 알을 지켜야 하는 현실과

나를 가두고 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사이의 갈등에 무수히 시달리면서도

교과서 대신 신나는 무협지와

두꺼운 세계문학전집에

파묻혀 지내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립고 또 애틋합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수업시간에 딴짓이나 딴생각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까요

놉~ 공부 대신 여전히

딴짓과 딴생각에 열심일  분명합니다

그러니 돌아갈 필요도 없고

굳이 되돌아갈 마음도 전혀 없으니 

애써 돌아가지 않기로 합니다


대신 매일 아침 달걀을 깨서

달걀 프라이도 하고

달걀찜도 해 가며

또 하루라는 세계로부터

새롭게 태어나면 되니까요


날달걀이든 삶은 달걀이든

구운란이든 상관없이

하나씩 깨뜨릴 때마다

또 하나의 세계를 깨부수고 나오는

즐거운 하루살이 인생이니까요


어쨌거나 구운란은

고소하고 부드럽습니다

겉은 탱글탱글 속은 쫄깃하죠

구운란 하나만 먹어도 충분히 맛있지만

라면이나 떡볶이와 함께면 맛있으니

오늘은 매콤 떡볶이와 함께

맵고도 맛난 세상을

활짝 열어볼 생각입니다


달걀을 깨뜨리며

오늘도 나는

태어나고 또 태어납니다

굳이 그 시절로 되돌아갈 필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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