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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Feb 04. 2024

초록의 시간 686 친구의 이름을

가민가만 불러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친구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한번 불러봅니다

큰 소리  대신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불러봅니다


친구야

그냥 불러본다

밥은 먹었니

밥을 차려줄 것도 아니면서

또 그냥 물어봅니다


하루의 창문을 열었다 하면

해 뜨고 지고 딸 떠오르

금방 하루가 기울고

한 달의 문을 살짝 밀기만 해도

종이로 부채 접듯 스르르

한 달이 접힙니다


계절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다음 계절이 이어지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삶의 언덕에도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놓여 있는 듯

올라서기도 전에 다시 내려오고

미처 내려서기도 전에

휘리릭 올라갑니다


겁도 없이

하나둘 나이 먹어가며

이제는 그다지 설레지도

뭐 그리 신나지도 않은

또 한 번의 설날을 앞두고는

느닷없이 친구의 이름들

조르르 불러봅니다


그래 우리

서로의 이름은 부르며 살자

바쁘고 힘겨워도 가끔은

서로의 이름에 살며시 기대어 보자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철없이 행복하던 그 순간

잠시라도 그 마음 나눌 수 있으니

이름을 부르며 어깨동무해 보자


우리들 삶이 비록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에서 비껴 나

어설프게 서성이는 삶이더라도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내가 주인공임을 기억하자


가끔은 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어깨 기댈 수 있는 멋진 친구를 가진

내 인생의 주인공도 되어보고

근사한 주인공의 자리에 선 친구를 위해

다정한 그림자가 되기도 하며

그렇게 살기로 하자


고단한 삶의 모퉁이를 돌아서며

잠시 숨을 고르고

한 살 나이 더 먹기 전에

아직 한 살 어린 내가

한 살 덜 먹은 친구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다정히

니다


친구야

이름을 불러본다

밥은 먹었니

그냥 또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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