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86 친구의 이름을
가민가만 불러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친구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한번 불러봅니다
큰 소리 대신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불러봅니다
친구야
그냥 불러본다
밥은 먹었니
밥을 차려줄 것도 아니면서
또 그냥 물어봅니다
하루의 창문을 열었다 하면
해 뜨고 지고 딸 떠오르며
금방 하루가 기울고
한 달의 문을 살짝 밀기만 해도
종이로 부채 접듯 스르르
한 달이 접힙니다
계절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다음 계절이 이어지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삶의 언덕에도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놓여 있는 듯
올라서기도 전에 다시 내려오고
미처 내려서기도 전에
휘리릭 올라갑니다
겁도 없이
하나둘 나이 먹어가며
이제는 그다지 설레지도
뭐 그리 신나지도 않은
또 한 번의 설날을 앞두고는
느닷없이 친구의 이름들을
조르르 불러봅니다
그래 우리
서로의 이름은 부르며 살자
바쁘고 힘겨워도 가끔은
서로의 이름에 살며시 기대어 보자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철없이 행복하던 그 순간
잠시라도 그 마음 나눌 수 있으니
이름을 부르며 어깨동무해 보자
우리들 삶이 비록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에서 비껴 나
어설프게 서성이는 삶이더라도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내가 주인공임을 기억하자
가끔은 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어깨 기댈 수 있는 멋진 친구를 가진
내 인생의 주인공도 되어보고
근사한 주인공의 자리에 선 친구를 위해
다정한 그림자가 되기도 하며
그렇게 살기로 하자
고단한 삶의 모퉁이를 돌아서며
잠시 숨을 고르고
한 살 나이 더 먹기 전에
아직 한 살 어린 내가
한 살 덜 먹은 친구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다정히
불러봅니다
친구야
이름을 불러본다
밥은 먹었니
그냥 또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