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봅니다
그리고 사과합니다
서러워서 설이라시던
어릴 적 듣던 할머니 말씀이
문득 떠오르는 설 무렵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보며
중얼중얼 사과합니다
할머니의 설은 서러워서
그리고 내 설날은 슬픔이 영글어서
서러운 설이 되고
슬픔의 설날이 됩니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꼬까옷 색동저고리 설빔을 입고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흔적도 없이
대체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그 시절 함께 색동저고리 입고
까르르 웃던 동생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나처럼 사과를 좋아하던 동생은
아파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과를
나중에 실컷 먹겠노라 했었는데
한 알은커녕 한 조각도 먹지 못하고
멀리 가 버렸어요
바스락거리는 새 돈을 반듯하게 챙겨
세뱃돈을 주시던 딸바보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서 허허 웃고 계실까요
사과처럼 사랑스러운 딸들을
나중에 어른이 되어도
한 동네에 불러 모아 살며
날마다 맛난 거 사주시겠다고
큰소리 빵빵 치시더니
딸들이 채 어른이 되기도 전에
저 멀리 가 버리셨어요
사과처럼 예쁘지는 않으나
사과를 좋아하는 내게
사과처럼 땡글땡글 맺히는
그리움으로 오는 설날
사과를 보며
지금 내 곁에 없는
그리운 이들에게 사과합니다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있을 때 잘할 걸
내 곁에 있을 때
나중 말고 바로 그때
더 소중히 아껴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