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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Feb 15. 2024

초록의 시간 693 낭낭 18세라면

봄도 나이를 먹어요

겨울비 촉촉 빗방울 사이로

봄이 꼼지락대는 길을 휘돌아

천천 걸음으로 동네 한 바퀴~

어디선가 봄내음이 날아오는 듯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자전거가 다니는 초록길을

우산 쓴 어느 할아버지는

운동 삼아 천천히 거꾸로 걸어가시는데

출근 시간을 쫓아가는 어느 젊은이는

뚜벅뚜벅 바쁜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렇군요

시간은 나이와 반대로

젊은이에게는 머뭇머뭇

느리게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듯이

나이 든 이에게는 잽싸게 날아가는

화살촉처럼 앞뒤 없이 휘리릭~


그런데요

걸음은 시간과 달리 거꾸로

나이가 어릴수록 잽싸고 힘차고

나이가 하나둘 묵직해질수록

나이 따라 무거워져서 느려집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면서

또한 공평한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커피 한 잔을 사려고 들른 카페에서

진동벨을 받아놓고 보니

18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낭랑 18세라는 노랫말도

흥얼흥얼 뒤이어 떠오르고

만일이라는 말이 있을 뿐

세상에 만일 일어나는 일은 없지만

내 나이가 지금 18세라면~이라는

뜬금스럽고 엉뚱한 생각도 뒤를 이어요


내가 만일 낭랑 18세라면~

그럼 씩씩하고 힘찬 걸음이 빨라지는 만큼

시간이 거꾸로 느리게 흘러가겠죠

낭랑 18세라면~  중얼거리다 보니

라면 이름 같기도 하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납니다


봄을 재촉하듯 내리는

겨울비의 끄트머리를 잡고

저만치 수줍게 다가오는 봄은

분홍 저고리 고름 손에 말아

어여쁜 낭랑 18세로 보이지만

고운 봄도 흐르는 세월 따라

어김없이 나이를 먹어갈 테


철부지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두 걸음

머뭇머뭇 제자리를 맴돌 것만 같았으나

어느새 훌쩍 나이 든 우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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