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93 낭낭 18세라면
봄도 나이를 먹어요
겨울비 촉촉 빗방울 사이로
봄이 꼼지락대는 길을 휘돌아
천천 걸음으로 동네 한 바퀴~
어디선가 봄내음이 날아오는 듯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자전거가 다니는 초록길을
우산 쓴 어느 할아버지는
운동 삼아 천천히 거꾸로 걸어가시는데
출근 시간을 쫓아가는 어느 젊은이는
뚜벅뚜벅 바쁜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렇군요
시간은 나이와 반대로
젊은이에게는 머뭇머뭇
느리게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듯이
나이 든 이에게는 잽싸게 날아가는
화살촉처럼 앞뒤 없이 휘리릭~
그런데요
걸음은 시간과 달리 거꾸로
나이가 어릴수록 잽싸고 힘차고
나이가 하나둘 묵직해질수록
나이 따라 무거워져서 느려집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면서
또한 공평한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커피 한 잔을 사려고 들른 카페에서
진동벨을 받아놓고 보니
18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낭랑 18세라는 노랫말도
흥얼흥얼 뒤이어 떠오르고
만일이라는 말이 있을 뿐
세상에 만일 일어나는 일은 없지만
내 나이가 지금 18세라면~이라는
뜬금스럽고 엉뚱한 생각도 뒤를 이어요
내가 만일 낭랑 18세라면~
그럼 씩씩하고 힘찬 걸음이 빨라지는 만큼
시간이 거꾸로 느리게 흘러가겠죠
낭랑 18세라면~ 중얼거리다 보니
라면 이름 같기도 하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납니다
봄을 재촉하듯 내리는
겨울비의 끄트머리를 잡고
저만치 수줍게 다가오는 봄은
꽃분홍 저고리 고름 손에 말아 쥔
어여쁜 낭랑 18세로 보이지만
고운 봄도 흐르는 세월 따라
어김없이 나이를 먹어갈 테죠
철부지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두 걸음
머뭇머뭇 제자리를 맴돌 것만 같았으나
어느새 훌쩍 나이 든 우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