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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Feb 16. 2024

초록의 시간 694 잔물결 같은

은은한 삶

왠지 비뚤어지는 마음

그리고 시들해지는 기분 탓에

푹 고개 떨구고 싶을 때

창가의 화분을 봅니다


작은 꽃 한 송이도 살기 위해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창밖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꽃잎마다 다사로운 사랑을 품으려고

애써 고운 미소 머금어요


향기로운 꽃미소 입가에 매달고

한 송이 꽃이 되고 싶으나

꽃 같은 사람이 되기에는

젊지도 곱지도 않으니

유유히 흐르며

산도 품고 하늘도 담는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 같은 사람이 되려면

머무르지 말고 잔잔히 흘러야 하죠

고여 있으면 맑아질 수 없으니

큰 바다를 향해 잔잔히 흐르며 아롱지는

잔물결 같은 하루를 보내고 싶어서

창문 활짝 열고 작은 화분 곁에

친구처럼 나란히 앉아서 햇볕도 쬐고

바람도 듬뿍 맞이합니다


징검다리 건너듯 뜨문뜨문 읽어 본

소동파의 '적벽부' 한 구절

아른아른 떠올리며

그래~ 그렇다고 고개 끄덕입니다


눈부신 햇살도 차가운 바람도 

조물주가 내게 건네신 오늘 하루도

공짜~라고 중얼거립니다

공짜라는 말이 너무 가볍다면

공짜라고 쓰고

선물이라 읽으면 될까요?!


장자를 읽는 것보다

소동파의 적벽부를 읽으라~

누군가의 말을 듣고는 

더듬더듬 읽어보았어요


당송 8 대가의 한 사람인

송나라 대표 시인 소동파

그의 대표작품 '적벽부'라는 제목이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떠오르게 합니다


'붉은 절벽 아래 배를 띄우고

물이 흐르는 대로 이리저리 노니는데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잔잔하니 

한 잔 술을 다정한 벗에게 건네며

맑은 바람과 달을 노래한다'는 '적벽부'는

산전수전 다 겪은 소동파가 47세에

항저우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붉은 바위절벽 아래서

친구와 뱃놀이하며 지은

운문과 산문의 중간글인데요


그러나 그가 친구와 노닐던 적벽은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의

적벽과는 위치가 조금 다른 곳이라

동파적벽이라 불린답니다


어쨌거나 적벽 아래 친구와 노닐며

'적벽대전에서 결전을 벌이던

영웅호걸들은 다 어디 가고

적막한 강물에 달빛만 비친다'~

그는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연과 인간이

변한다고 변하는 거지만

변하지 않는다고 보면

변함이 없다' 하죠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 주인이  있으므로

내 것이 아닌 것은

가벼운 깃털 하나도 넘보지 말고

내 것이 아니니 갖지도 말아야 하지만

맑은 강바람과 산 위 밝은 달빛은

귀로 들으면 소리와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빛과 그림되어 

비록 내 것이 아니라도

조물주의 선물이므로

누구라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으니

가져도 안 된다며 말리는 이 없고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여유로운 마무리가 맘에 들어요


다시 창가의 화분을 보며

음~ 고개 끄덕입니다

그러니까 한 송이 작은 꽃도

햇빛무한 공짜라는 걸 아는 거죠


'적벽부'를 읽었을 리 없는 작은 꽃들이

조물주의 선물인 바람과 햇살과 공기를

맘껏 제대로 누릴 줄 알고 있으니

대단하고 대견합니다


한 송이 작은 꽃도

기특하게 누리는 순간의 여유

변하면서도 변함이 없

조물주의 귀한 선물을

나도 따라 여유로이 누려봅니다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고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반짝 빛나는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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