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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Mar 14. 2024

초록의 시간 721  근심 걱정 지우개

지우개로 지워버리게

울집 베란다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면

서쪽하늘 저녁놀이 보입니다

유난히 붉고 고운 저녁놀이라서

사진으로 저장해 보려는데

어머나 유리창에 얼룩이 많아요


안쪽 유리창이야 닦을 수 있으나

어차피 바깥 유리창은 닦을 수 없으니

얼룩 아닌 무늬라 생각하고

그까이꺼~ 대범하게 건너뜁니다

아니면 엊그제 봄비의 흔적이라고

뻔뻔 생각을 해 보거나~


우리 생각과 마음에 드리워진

걱정과 근심의 얼룩들도

유리창 얼룩처럼 닦아내기 쉽지 않으니

알록달록 감성 무늬라고 생각하고

대범하게 건너뛸 수 있으면

참 좋겠으나 물론 쉽지 않아요


삶의 흔적이라고 생각해 봐도

고와 보이기는커녕 더 울적해질 뿐

모든 걱정은 걱정이고

온갖 근심은 근심일 뿐


화장은 지우는 게 중요하다며

화장 지움 비누가 있듯이

근심 걱정을 지울 수 있는 

비누나 지우개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 또한 없어요


걱정을 지울 수 없으니  글자 하나

재미 삼아 살짝 바뀌 봅니다

지우개에서 게 하나 바꾸면

지우게~ 지우라는 말이 됩니다

근심 걱정 다 지워버리게~


이보시게 근심 걱정 지우게

가득 끌어안고 버거워하지 말고

지우개로 지우듯 쓱싹 지우게

거품 퐁퐁 비누로 닦아내듯

말끔히 지워버리게


인생이 버거운 짐이어서 어깨 무겁고

가족 또한 짐이어서 발목 묵직하거든

그렇다고 에이C  몰라라

내팽개치고 핑하니 달아나거나

덥석 바닥에 내려놓지는 말고

짐이 아닌 몫이라고 생각하시게~


내 짐이 아니고

내 몫이라고 바꾸면

어깨가 한결 가벼워져요

그까이꺼~ 감당할 만해져요

그냥 웃으며 와락 끌어안을 수 있어요


옛날 이야기꾼 울 할머니가 들려주신

나무꾼 이야기에도 있었어요

나무꾼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엔 지게 한 짐뿐


그래서 신령님께 빌었답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 짐만 더

배꼽손으로 간절히 부탁했더니

나무꾼의 정성에 감동한 신령님이

그날은 두 짐을 하게 해 주셨대요


나무꾼 얼마나 신이 났겠어요

그날 밤 마당에 나무 두 짐을 쌓아두고

부자꿈 꾸며 단잠 꿀잠에 빠졌는데요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언제나처럼 한 짐뿐이었대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산에 가서는 분명 두 짐을 해 오지만

자고 일어나면 다시 한 짐뿐

세상에 이런 일이~


나무꾼이 산에 가서

산신령님께 따져 물었답니다

제아무리 애를 쓰고

두 배로 노력해도 한 짐뿐이니

이를 어쩔~


허허 웃으시던 산신령님

나무꾼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시다가

축 늘어진 나무꾼 어깨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죠


나무꾼아 나무꾼아

그래도 반 짐보다 낫고

 지게보다는 훨 낫지 않느냐

네 복이 나무 한 짐이니

이를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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