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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Mar 03. 2024

초록의 시간 710 나에게 묻데이

셀프 묻데이

뭣이라~ 묻데이라니

번거롭게 또 뭘 줄줄이 물어보려고

쓰읍~ 하시겠으나

아닙니다


너에게 묻데이가 아니라

나에게 묻데이니

염려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더구나 물어보는 날이 아니고

묻어가는 날이니까요


친구가 여행 멤버 언니들이랑

봄맞이 점심 약속 있다기에

언니들 잘 모시고

말 잘 듣고 와~


친구가 흥칫뿡~

세상 편한 자리랍니다

말 잘해서 주도하는 언니 따로 있고

척척 밥 잘 사주는 언니 따로 있고

커피 잘 쏘는 작은언니도 따로 있고

운전 솜씨 짱인 언니까지 있으니

그냥 가서 재롱 좀 떨다가

편하게 맛난 밥 먹고 오면 된답니다


세상 그런 편한 자리가~

그런 자리 있으면 소개해줘

나도 한번 끼워주라~ 하려다

히힣 웃으며 잽싸게 맘 접고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자리가 있고

누구나 자신의 몫을 안고 있는데

남의 것 남의 자리 물색없이 기웃대며

스리슬쩍 넘보면 안 되니까요


나는 맏이입니다

흔히 말하는 K 장녀

아버지와 엄마도 장남 장녀라

사촌 중에서나 외사촌 중에서도 맏이

그래서 언니 오빠가 아예 없어요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니고

타고만 맏수저인 셈이죠


한 살 위 오빠가 있긴 했으나

아장아장 걸음마채 배우기 전에

아기모자만 열 몇 개 남기고

하늘아기가 되어버렸으니~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호칭이라

지금도 아무에게나 언니 오빠

선뜻 부르지 못해서

아예 안 부르고 뭉개거나

꼭 필요하면 글자로 씁니다


소리 내서 언니라고 부르기는

서툴고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언니 언니 작은언니

언니라고 쓰는 건 언제든 오케이

얼마든지 괜찮으니까요


그뿐인가요

불쑥 손 내밀지도 못하고

어디 기대며 엉기는 법도 모르고

묻어가는 법도 배우지 못했어요

누구에게 시키는 도 못하고

앞장서는 일은 더욱 못하는

타고 난 셀프족입니다


맏이와 셀프족이라니

꿀조합은커녕

전혀 어울립니다

외동이 같은 맏이라서

어색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죠


별 수 없이

나 스스로에게 묻데이

기대고 싶을 땐

내 어깨에 맘껏 기대고

묻어가고 싶으면 서슴없이

나에게 묻어가는 셀프 묻데이


그리하여 오늘은

밥도 커피도 달콤 간식도

평온 휴식과 쓰담쓰담 위로까지도

나만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묻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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