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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Feb 29. 2024

초록의 시간 707 세상의 끝에서

우정을 외치다

노래가 있었어요

해묵은 옛 노래인데요

세상 쓴맛 제대로 모르던 어릴 때

'세상의 '이라는 노래를

친구들이랑 어울려 부르곤 했었죠


갑자기 그 노래가 생각난 건

서랍을 뒤적이다가

엽서 한 장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한참 전에 얼굴 희고 고운 친구가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보내온

엽서 한 장을 찾아들고는

혼자 싱긋 웃습니다


'왜 태양은 여전히 빛나는지

왜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오는지

이 세상의 끝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요

당신의 사랑이 이미 끝나버렸는데'


친구들이랑 서툰 발음으로

영어 가사를 외워가며 부르던

스키터 데이비스의 정감 있는 목소리로

옛 노래를 찾아 듣습니다


노래에서 말하는 세상의 끝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그만

안녕~ 이라고 말할 때이니

사랑의 종말과 같은 의미인 거죠


알고 보니 그 노래에는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었어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의 세월이

모이고 쌓여 노랫말이 만들어지고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담긴

애틋한 목소리로 부른 노래거든요


작사가인 실비아는 

세상을 뜨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40년에 거쳐 노랫말로 만들었고

절친 베티와 함께 듀엣으로 노래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베티가 세상을 떠난 후

한동안 노래를 그만둘 정도로 상심했던

스키터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답니다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그녀의 애칭 스키터는 모기라는 뜻이래요

모기가 앵앵거리듯 귀엽게 노래한다고

할아버지가 붙여주신 애칭이랍니다


사랑이 끝날 때 세상도 끝난다는

스키터의 우수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친구의 엽서를 들여다봅니다


친구가 보낸 엽서 속

세상의 끝에 가보지 못했으나

멀고 먼 세상의 끄트머리

다녀온 친구가 있으니

그걸로 되었죠


내가 뭐라고

그 순간 나를 생각해 주고

짬을 내서 써 보낸 엽서가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친구는 푸른 보석처럼 빛나는

빙하의 숨소리를 듣고

빨대로 쪼로록 쌉싸름한 마테차도 마시고

자줏빛 새콤한 칼라파테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을까요

아니면 청량한 빛깔의

빙하맛 아이스크림을 먹었을까요


노래 속 사랑의 종말은 슬픔이지만

현실의 우정은 즐거운 현재진행형이니

'The End of the World '

댄스 버전으로 다시 들으며

세상의 끝에서

신나게 우정을 외쳐봅니다


친구와 함께

세상의 끝에 다녀온 셈 치고

오늘은 칼라파테와 빛깔이 비슷한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힘차게 우정을 외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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