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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Mar 01. 2024

초록의 시간 708 엄마님 전상서

봄날의 반성문입니다

엄마 까무룩 졸지만 마시고

창밖을 좀 내다보세요

엄마의 새로운 봄날이

또 한 번 시작되고 있어요

다시 봄날을 맞이하는 기분

밝고 개운하고 상쾌합니다


엄마 울 엄마 이리 오세요

연둣빛 봄바람 살랑이며

붉은 꽃이파리를 스치는

따사로운 봄볕 가득한 창가

엄마가 좋아하시는 고운 화분 곁에

잠시 편안히 앉아 보세요


엄마와 내가 함께 맞이하

이 봄날이 내게는 참 고맙고

정답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새순 돋아 오르는 봄을 맞이하며

내년 봄에도 엄마와 함께

눈부신 봄맞이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거든요


참 다행이죠

이 봄을 또다시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고맙습니다

부족한 내가 엄마를 위해

게으른 손 꼼지락대며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이만큼 주셨으니


그리고 엄마 미안합니다

어릴 적부터 병약한 나를

조바심 안고 키우셨죠

행여 아플세라

어딘가 다칠세라

조금이라도 마음 상할세라

늘 말없이 바라보며 지켜주셨어요


엄마 미안해요

청개구리도 아니면서

엄마가 웃으라 하면 울고

울지 말라하면 더 크게 웃었어요


밤새 책 읽다가 늦잠에 빠져

밥투정 부리느라 밥 안 먹고

가방 메고 학교로 달아난 나를 위해

카스텔라와 우유를 교실까지 가져다주셨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시큰둥 표정이었던

그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철부지 딸이 어릴 적에

엄마가 읽다 두신 소설책 몰래 읽다가

엄마가 곱게 접어둔 페이지를

그만 휘리릭 넘겨버린 것

엄마는 모르셨을까요

알고도 모르는 척

눈 감아 주셨을 거예요


고집쟁이 끝판왕인 내가

마음에 1이라도 안 드는 일 있으면

이불 뒤집어쓰고 투정을 부리며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가는 줄 착각할 때도

엄마는 어서 일어나라 재촉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려주셨어요


엄마 미안해요

책 펴고 공부하려다가도 엄마가

공부 얘기를 꺼내시면 흥칫뿡~

책 덮고 딴짓하던 못난 딸이었어요

잔소리와 거리가 먼 엄마였는데

어렵게 꺼내신 그 한마디를

참지 못하고 어깃장 부리던

철부지 딸을 다그치지도 않고

스스로 일어서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늘 제멋대로 제 맘대로

제 뜻대로 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엄마는 나를 믿고 그냥 두었죠

간섭하지 않고 내게 맡겨주어서

감사하고 또 미안해요


나 어릴 적 우연히

집 앞을 스쳐 지나가시던 어느 스님이

내 얼굴을 이윽히 들여다보시다가

이 아이는 그냥 두면 되니

저 하고픈 대로 하게 두시라~


그 말씀 덕분이었을까요

어린것의 철없고 겁도 없고

당돌하고 무모한 선택이라도

나무라거나 다그치지 않으시고

서툰 모습도 묵묵히

지켜봐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곁에서는

부지런하지 못한 내가

게으르게 늘어져 있어도 괜찮았어요

맘 놓고 아파도 괜찮았고

실컷 성질부려도 되었고

입 꾹 다물고 며칠을 지내도

괜찮고 좋았어요


엄마 눈에는 늘 철부지였을

청개구리 고집쟁이 딸이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엄마에게

떼를 부리고 투정을 부려도

엄마는 내가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라셨어요


엄마~ 

아장아장 걷기도 버거운 몸으로

또 한 번의 눈부진 봄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셔서

고맙고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부실하고 못난  딸을 위해

한없이 부족한 자식들을 향해

따뜻한 밥이 되어주신

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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