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08 엄마님 전상서
봄날의 반성문입니다
엄마 까무룩 졸지만 마시고
창밖을 좀 내다보세요
엄마의 새로운 봄날이
또 한 번 시작되고 있어요
다시 봄날을 맞이하는 기분
밝고 개운하고 상쾌합니다
엄마 울 엄마 이리 오세요
연둣빛 봄바람 살랑이며
붉은 꽃이파리를 스치는
따사로운 봄볕 가득한 창가
엄마가 좋아하시는 고운 화분 곁에
잠시 편안히 앉아 보세요
엄마와 내가 함께 맞이하는
이 봄날이 내게는 참 고맙고
정답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새순 돋아 오르는 봄을 맞이하며
내년 봄에도 엄마와 함께
눈부신 봄맞이를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하곤 했거든요
참 다행이죠
이 봄을 또다시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고맙습니다
부족한 내가 엄마를 위해
게으른 손 꼼지락대며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이만큼 또 주셨으니
그리고 엄마 미안합니다
어릴 적부터 병약한 나를
조바심 안고 키우셨죠
행여 아플세라
어딘가 다칠세라
조금이라도 마음 상할세라
늘 말없이 바라보며 지켜주셨어요
엄마 미안해요
청개구리도 아니면서
엄마가 웃으라 하면 울고
울지 말라하면 더 크게 웃었어요
밤새 책 읽다가 늦잠에 빠져
밥투정 부리느라 밥 안 먹고
가방 메고 학교로 달아난 나를 위해
카스텔라와 우유를 교실까지 가져다주셨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시큰둥 표정이었던
그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철부지 딸이 어릴 적에
엄마가 읽다 두신 소설책 몰래 읽다가
엄마가 곱게 접어둔 페이지를
그만 휘리릭 넘겨버린 것
엄마는 모르셨을까요
알고도 모르는 척
눈 감아 주셨을 거예요
고집쟁이 끝판왕인 내가
마음에 1이라도 안 드는 일 있으면
이불 푹 뒤집어쓰고 투정을 부리며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가는 줄 착각할 때도
엄마는 어서 일어나라 재촉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려주셨어요
엄마 미안해요
책 펴고 공부하려다가도 엄마가
공부 얘기를 꺼내시면 흥칫뿡~
책 덮고 딴짓하던 못난 딸이었어요
잔소리와 거리가 먼 엄마였는데
어렵게 꺼내신 그 한마디를
참지 못하고 어깃장 부리던
철부지 딸을 다그치지도 않고
스스로 일어서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늘 제멋대로 제 맘대로
제 뜻대로 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엄마는 나를 믿고 그냥 두었죠
간섭하지 않고 내게 맡겨주어서
감사하고 또 미안해요
나 어릴 적 우연히
집 앞을 스쳐 지나가시던 어느 스님이
내 얼굴을 이윽히 들여다보시다가
이 아이는 그냥 냅두면 되니
저 하고픈 대로 하게 두시라~
그 말씀 덕분이었을까요
어린것의 철없고 겁도 없고
당돌하고 무모한 선택이라도
나무라거나 다그치지 않으시고
서툰 모습도 묵묵히
지켜봐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곁에서는
부지런하지 못한 내가
게으르게 늘어져 있어도 괜찮았어요
맘 놓고 푹 아파도 괜찮았고
실컷 성질부려도 되었고
입 꾹 다물고 며칠을 지내도
괜찮고 좋았어요
엄마 눈에는 늘 철부지였을
청개구리 고집쟁이 딸이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엄마에게
떼를 부리고 투정을 부려도
엄마는 내가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라셨어요
엄마~
아장아장 걷기도 버거운 몸으로
또 한 번의 눈부진 꽃봄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셔서
고맙고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부실하고 못난 이 딸을 위해
한없이 부족한 자식들을 향해
따뜻한 밥이 되어주신
울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