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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May 03. 2024

초록의 시간 753 포기에 대한 변명

또는 해명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포기는 달콤해요

포기할 필요도 있고

포기해야 할 때도 있죠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2 때 과감히 수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수포자가 되었습니다


전혀 다를 것만 같은

수학과 음악이

가까운 이웃사촌인  맞아요

수포자에 이어 덤으로

포자까지 됐거든요


어릴 때 아버지에게 배운 하모니카는

그다지 연습이 필요하지 않아서

금방 푸른 하늘 은하수~

서툴게라도 불 수 있게 되자

그만 시시해졌어요


기타는 중학생 때

삼촌이 가르쳐준다는데

학교 숙제도 버겁고

게을러서 배우지 않았고

나중에 다 커서 배우러 다니다가

손끝에 굳은살이 내려앉기 시작하면서

어설프게 '로망스'를 칠 수 있게 될 무렵

과감히 포기했어요


피아노 역시 어른이 되어 배워봤어요

체르니 30까지 목표로 삼았으나

하논의 반복을 견디지 못해서

간신히 '엘리제를 위하여' 

흉내 비슷하게 칠 수 있게 되자

그만두었으 30번까지의 목표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오카리나는 제법 불 수 있게 되자마자

소리가 너무 슬퍼 손에서 놓았습니다

결국 악기는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말았으니

악포자입니다


이유는 게을러서이고

단순 반복이 싫어서이기도 하죠

포기라는 말은 재미없는 말이지만

때로 분명하고 편한 말이기도 합니다

포기하고 나면 아쉬운 만큼

개운해지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포기는 때로

비움이 되기도 해요

헛된 욕심을 비우고

부질없는 희망을 버리고 나면

솜털처럼 보송하게

날아오를 수 있거든요


비우고 버리고

그만큼 가벼워진다면

민들레 홀씨처럼 훌훌

바람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

그 또한 포기의 즐거움이라고

믿고 싶으나~


그러나 포기는

인내심의 부족이고

습관이 된 버릇이었음을

이제야 솔직 인정합니다


하루하루의

연습과 반복이 쌓여

세월과 인생이 되고

연습과 반복 속에 변화가 있음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일까요


넘어져도 주저앉거나

에라 모르겠다 나 몰라라~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다시 일어나

이만큼 살아냈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수포자이고 악포자이지만

반복되는 오늘을 포기하지 않고

게으른 걸음이라도 또박또박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스스로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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