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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May 04. 2024

초록의 시간 754 뜬금 꽃길에게

꽃길 나와라 뚝딱

어머나 이게 뭔 일일까요

며칠 만에 뚝딱 꽃길이 생겼습니다

벼락처럼 만들어진 급꽃길

뜬금 꽃길인 셈인데요


외인부대와도 같이

사과상자에 용병으로 실려와

길을 따라 심어진 꽃들마저도

서로가 서로에게

무척이나 낯선 얼굴로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해

어정쩡한 모습들이 측은해 보입니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꽃길 나와라 뚝딱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금방 뚝딱 만들어진

반짝 꽃길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엄청 기대했었죠

꽃 지고 신록 물드는 이때

새삼 화려한 꽃길이라니

웬 횡재인가 싶었습니다


빛깔과 향기 저마다 다르게

화사하더라도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은은 매력 잔잔히 흐르는

온갖 꽃들의 사열을 받으며

꽃길을 걷는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며칠이었어요


그러나 역시나 그렇군요

갑작 뜬금 벼락 반짝 꽃길은

아무래도 눈에 설어요

벼락부자가 된 기분이 어쩜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뭥미?

매력 꽃길 맞음?


학생 시절 시험 앞두고 

어김없이 책만 잔뜩 쌓아두고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그저 멀뚱거리며 날밤 새던

벼락치기 공부가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납니다


벼락치기란 띄엄띄엄

얼렁뚱땅 잽싸게 건너뜀이니

엉성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죠

과정을 또박또박 거치지 않아

뿌리가 단단하지 않으니

제대로일 수가 없는 거니까요


조르르 늘어선 꽃들이

낯선 학교로 전학을 온 꽃들이고

먼 데서 우르르 이사 온 꽃들이고

느닷없이 입양 온 꽃들이고

준비도 없이 이민 온 꽃들이고

맞선 없이 시집온 꽃들이라서

쭈빗쭈빗 서툴고 어색하고

설플 수밖에요


그래서 전체를 보지 않고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기로 합니다

기다랗게 이어지는 꽃길을 보지 않고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봅니다


나무를 보면 숲을 볼 수 없다지만

때로는 한 그루 나무를

찬찬히 봐야 할 때가 있어요

멀리 숲을 보다가 그만

한 그루 나무고이 간직한

사연의 애틋함을 건너뛸 수도 있듯이

꽃길을 이루는 꽃들에게도

저마다 가슴에 품은 사연이 있을 테니

하나하나 귀 기울이며

눈여겨봐야겠어요


어서 와

우리 동네 온 걸 환영한다~

낯선 동네 눈 선 풍경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뜬금 꽃길에게

다정한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넵니다


어디서 왔니

친구가 되어줄게

우리 친하게 지내보자

어디든 정들면 고향이라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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