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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n 01. 2024

초록의 시간 771 봄이라는 이름

향기로운 돌봄

넝쿨장미 붉게 어우러지면

봄날은 순삭입니다

올망졸망 붉은 꽃송이 기다리며

초록잎새 늘어진 모퉁이를 돌아서면

화사한 연분홍 벚꽃길이었는데

장미꽃 모퉁이를 돌아서니

어느새 여름입니다


더 있어보려 했으나

이제는 가야 할 때라고

붉은 꽃송이들이 고개를 떨굽니다

잠시 웃어보려 했으나

그 역시 무리라고

더 기다려볼까 하는 마음과

조금 더 참아보려는 마음

그 또한 무리라고 ~


꽃망울 영글어 피어나기까지

눈부신 햇살을 기다리고

바람과 빗방울을 친구 삼아

무수히 참고 견디며 기다렸으나

이제 더 이상은 무리

가장 예쁠 때가 이미 지났으니

지금은 참지 고 시들어

미련 없이 떨어져야 할 때라고~


숨죽이며 참다 보면

병이 날 듯도 하니

이제 그만 서서히 가야 한다며

덩굴장미가 고개를 숙여

작별의 인사를 건넵니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짧은 만큼 좋았고

짧은 만큼 귀하고

짧았으니 더 많이 소중했다고

덩굴장미가 꽃이파리 훌훌

작별의 편지 삼아 담장 위에 떨굽니다


참고 기다리는 거

제아무리 잘한다 해도

너무 참으면 안 된다고

덩굴장미가 속삭입니다


꾹꾹 눌러 참으면 병이 나요

아프면 아프다고 엄살도 부리고

슬프면 슬프다고 눈물도 떨구고

지치면 지쳤다고 고개 숙이며

어딘가에 기댈 줄도 알아야죠


봄이 왜 봄인가 하면

꽃처럼 향기로운 돌봄이거든요

스스로 돌아보고 다독이며

보살피고 보라는

돌봄의 봄이랍니다


보세요

꽃이파리 떨구듯

눈물 떨구며 저무는

아련한 봄날의 끄트머리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향기롭게 잠시 머무르다가

붙잡을 사이도 없이 달아나는

봄날의 발자국 소리


어제와 같은 길을 또박또박

모퉁이를 돌아서니

이제 여름입니다


아마도 여름은

봄보다 더 길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무덥겠지만

여름이라는 이름 또한 

푸르른 돌봄인 거죠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서도

스스로를 잘 여미고 돌보라고

넝쿨장미가 뚝뚝 꽃이파리 떨구며

작별 인사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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