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71 봄이라는 이름
향기로운 돌봄
넝쿨장미 붉게 어우러지면
봄날은 순삭입니다
올망졸망 붉은 꽃송이 기다리며
초록잎새 늘어진 모퉁이를 돌아서면
화사한 연분홍 벚꽃길이었는데
장미꽃 모퉁이를 돌아서니
어느새 여름입니다
더 있어보려 했으나
이제는 가야 할 때라고
붉은 꽃송이들이 고개를 떨굽니다
잠시 더 웃어보려 했으나
그 역시 무리라고
더 기다려볼까 하는 마음과
조금 더 참아보려는 마음
그 또한 무리라고 ~
꽃망울 영글어 피어나기까지
눈부신 햇살을 기다리고
봄바람과 빗방울을 친구 삼아
무수히 참고 견디며 기다렸으나
이제 더 이상은 무리
가장 예쁠 때가 이미 지났으니
지금은 참지 말고 시들어
미련 없이 떨어져야 할 때라고~
더 숨죽이며 참다 보면
병이 날 듯도 하니
이제 그만 서서히 가야 한다며
덩굴장미가 고개를 숙여
작별의 인사를 건넵니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짧은 만큼 좋았고
짧은 만큼 더 귀하고
짧았으니 더 많이 소중했다고
덩굴장미가 꽃이파리 훌훌
작별의 편지 삼아 담장 위에 떨굽니다
참고 기다리는 거
제아무리 잘한다 해도
너무 참으면 안 된다고
덩굴장미가 속삭입니다
꾹꾹 눌러 참으면 병이 나요
아프면 아프다고 엄살도 부리고
슬프면 슬프다고 눈물도 떨구고
지치면 지쳤다고 고개 숙이며
어딘가에 기댈 줄도 알아야죠
봄이 왜 봄인가 하면
꽃처럼 향기로운 돌봄이거든요
스스로 돌아보고 다독이며
보살피고 돌보라는
돌봄의 봄이랍니다
보세요
꽃이파리 떨구듯
눈물 떨구며 저무는
아련한 봄날의 끄트머리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향기롭게 잠시 머무르다가
붙잡을 사이도 없이 달아나는
봄날의 발자국 소리
어제와 같은 길을 또박또박
모퉁이를 돌아서니
이제 여름입니다
아마도 여름은
봄보다 더 길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무덥겠지만
여름이라는 이름 또한
푸르른 돌봄인 거죠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서도
스스로를 잘 여미고 돌보라고
넝쿨장미가 뚝뚝 꽃이파리 떨구며
작별 인사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