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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n 02. 2024

초록의 시간 772 울 엄마 눈에는

예쁜 것만 보여요

울 엄마 눈에는

예쁜 것만 보여요

울 엄마 손 끝에서는

사랑스러움이 반짝여요


꼼지락 움직이는 것도 버겁고

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귀찮고 번거로우신지

말수 표 나게 줄어들고

고운 목소리 잃은

인어공주 흉내라도 내시듯

 대신 손끝으로

마음을 대신하시는 울 엄마가

참 오랜만에 가느다란 목소리로

모자 이쁘다~고 하십니다


이쁘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열립니다

내가 이쁜 게 아니라 모자가

내가 쓴 모자가 이쁘다 하시는데

누가 이쁘든 상관없이

그저 엄마 목소리가 좋아서

잉잉대는 모기 소리처럼 작지만

그래도 반갑고 좋아서

활짝 웃음이 납니다


예쁘냐고 되묻고는

엄마 줄까? 덧붙이니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시는

울 엄마에게 선뜻

모자를 벗어 드립니다

쓰던 모자를 건네기 쉽지 않으나

엄마니까요


그런데 모자가 너무 커서

엄마 눈을 가리고 맙니다

모자가 큰 게 아니라

수분이 달아나 줄어든 과일처럼

울 엄마 머리가 작게 줄어들어

눈 아래까지 내려오고 말아요


내 머리가 너무 커서

내 모자도 너무 크고

작고 예쁜 엄마 머리에 맞지 않으니

엄마 머리에 어울리는 모자로

다음에 사 드리겠다고

손가락 걸어 약속합니다


고개 끄덕이시던 엄마가

손 내밀어 가리키는 곳에

덩굴장미가 싱그럽게 웃고 있어요

장미송이들이 사이좋게 모여 만든

꽃하트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입니다


그래요 엄마

엄마 눈에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만 보여요

엄마 손이 가리키는 곳에서는

반짝이는 순간의 행복이 있어요


울 엄마 눈에서는

꽃분홍 하트눈 뿅뿅

울 엄마 손끝에선

반짝반짝 금빛 물결 찰랑대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모자 세모 났네

세모 난 내 모자~

함께 노래도 불렀으나

노래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이렇게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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