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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May 27. 2024

초록의 시간 770 가지꽃이 피었어요

치에즈~ 웃어봐요

다음 생까지 감히 바라지 않으나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솜씨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솜씨 중에서도 음식솜씨를 지닌

손끝 야무진 사람이면 좋겠어요


밥도 고슬고슬 윤기 나게 지어내고

반찬도 뚝딱 맛나게  만들어내고

좋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요리도

각별하게 만들어 대접하고 싶으나

마음뿐~ 타고난 꽝손이니

부질없이 다음 생을

막연히 기약해 보는 수밖에요


요리를 못하는 대신

요리 프로그램은 즐겨 봅니다

왁자지껄 출장요리단의

대용량 뚝딱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와우~감탄에 쏟아냅니다


우와~감탄 연발하며 바라볼 뿐

당장이라도 화면을 뚫고 들어가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대신

엉뚱 상상에 빠져듭니다


맛난 음식

보여주지만 말고

냄새까지 덥석

얹어 주면 더 좋을 텐데요


티브이 화면에 문이 있다면

그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바다가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싱싱한 바지락 고소하게 들어간

빠에야 한 그릇 먹고 싶다는

엉뚱 상상을 해 봅니다


뭉근하게 끓인 소고기뭇국도

시원 구수하게 맛있어 보이고

큼지막한 무쇠 솥뚜껑에 고기 듬뿍

토마토 듬뿍 넣은 빠에야도 맛나 보이는데

지지고 볶으며 일하는 손길들은 분주해서

그저 바라보기에도 안타깝지만

제삼자인 나는 구경하는 재미가

안타까운 만큼 쏠쏠합니다


요리는 못하지만

요리 프로그램은 즐겨 보고

참 쉽다는 바지락볶음도

먹고 싶은 마음뿐

강 건너 요리 구경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요리를 하는 대신

작은 화분에 채소 모종을 심어

볕 잘 드는 창가에 두고

어쩌다 채소꽃들이 피어나면

신기해서 자주 들여다봅니다


요리 구경 실컷 하고는

창밖을 내다보니

가지꽃이 한 송이 쏘옥

고개를 내밀었어요


꽃이 피었으니

열매도 맺힐까요

열매까지 바라는 건

너무 앞서가는 걸까요


연보랏빛 가지꽃을 보며

치에즈~ 셀카를 찍는 것도 아니면서

치에즈~ 중얼거리며 웃어봅니다

우리는 김치 치즈~하며 찍는데

중국에서는 사진 찍을 때

치에즈~라고 한다죠

가지가 치에즈니까요


연하고 순한 보랏빛

가지꽃이 피었다 지고

진한 보랏빛 가지 열매가 맺히면

새하얀 커피꽃 피고 커피체리

알알이 붉게 맺힐 때처럼

기특하고 신기하고 재미날 것 같아요

맺히면 다행이고 아님 말고~


가지꽃 피었다 진 자리에

보랏빛 가지가 열리면

바지락볶음 대신

가지볶음이라도 해 볼까요?


고기 대신 가지를 넣은

빠에야는 어떨까 생각하다가

후후 웃고 맙니다

이제 막 꽃 한 송이 피었을 뿐인데

우물에 가서 빠에야 찾는 격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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