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32 다가서지 말아요
영화 '베르메르에 가까이'
선을 넘으면 소리가 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면
삐리리~ 경고음이 울립니다
그러니 더 다가서지 말아요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지 말아요
그러나 영화 '베르메르에 가까이'는
제목처럼 가까이 더 가까이
베르메르에게 다가서는 이야기입니다
원제는 'Close to Vermeer'이고
쉬자너 라에스 감독의
네덜란드 영화입니다
역대급 베르메르 전시회를 앞두고
그림들을 모으는 준비 과정과
베르메르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여정을 그대로 담은 영화인데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전시 작품을
네덜란드로 가져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외교적인 절차와
그림을 겹겹이 나누어 스캔하면서
수수께끼를 풀듯이 그림에 대한
궁금증을 차분히 풀어나가는
진지한 영화입니다
국립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보존 전문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열정과 진솔함을 보여 주고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모아
빛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관람객이 넘어서면 안 되는 선을 넘어
전문가의 눈으로 가까이
그리고 깊숙이 다가서는
미술 영화인 거죠
전시 준비과정에서
'플루트를 든 소녀'에 대한
진위 논쟁이 벌어지는데요
베르메르가 그린 것이라기에는
완성도와 정확성이 부족한 작품이라서
그의 기법을 곁에서 보며 배우고 이해한
지인이나 제자의 작품일 거라는 추측 등
서로 다른 의견을 거침없이 나누면서도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전시작품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화가와 그림의 미스터리한 부분까지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빛과 색으로 고요함을 표현한
네덜란드 화가인데요
평범하고 차분하고 평온한 일상 속
여인들의 모습을 즐겨 그리면서
그림 속에 대부분 창문을 그려 넣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운하도시 델프트에서 태어난
그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도 거의 없고
자화상조차 남기지 않아
'델프트의 스핑크스'라 불릴 만큼
미스터리한 화가인데요
영화 '베르메르에 가까이'는
그의 그림 37점 중 28점의 그림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전시하기 위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하는 어려운 과정을
흥미롭게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보여줍니다
베르메르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푸른색 두건으로 머리를 동여맨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그림이죠
크고 맑고 놀란 듯한 눈과
묘하면서도 신비스러운 표정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입술과
진주 귀고리의 투명한 반짝임이
매혹적인 소녀입니다
누구를 그렸는지 알려지지 않은
신비스럽고 사랑스러운 소녀인데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표정을 닮아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린답니다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소녀를 향한
상상과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하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도
그림 못지않게 매력적이어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을 다시 읽고
영화를 다시 보게 되더라도
너무 가까이 다가서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화가도 아니고 큐레이터도 아니지만
다시 보고 싶다는 나의 열정만큼은
있는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