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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ug 24. 2024

초록의 시간 831 잔잔하고 따사로운

일본영화 '하나와 미소시루'

잔잔하고 따사로운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는

이별의 슬픔까지도

맑고  감성적입니다


일본어로 하나는 꽃이고

미소시루는 일본 된장국인데요

꽃은 바라볼 때마다 사랑스럽고

꽃의 기억은 늘 아련합니다


미소시루는 호로록 마실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우리 된장국 같아요


울 엄마도 그러셨거든요

무더위에 지치는 여름이면

더울수록 따뜻하게 먹어야 한다며

감자랑 호박이랑 온갖 채소 듬뿍 넣어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주셨어요


울 엄마는 나에게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어린 딸 하나에게 차근차근

미소시루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주인공 치에는 실존 인물이랍니다


그녀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현미 생활'이라는 블로그에 

연재한 내용들 모아서

남편 싱고가 에세이로 엮고

아쿠네 감독이 만든 영화가 바로

'하나와 미소시루'입니다


병은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희망을 산산이 부순다는

치에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문기자 싱고(타키토 켄이치)

성악과 대학원생 치에(히로스에 료코)와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치에는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데

그래도 결혼하겠냐고 다시 물어도

싱고의 대답은 똑같습니다

하고 싶다고~ 하겠다는 싱고에게

아버지는 부탁한다며

결혼을 허락합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병에게 질 수 없다는 치에는 

씩씩하고 밝고 당찹니다


항암 치료 후 머리가 빠지자

두건 대신 선물 받은 모자를 쓰고

따뜻하다며 웃는 치에는

가발을 쓴 신부가 되어

싱고와 결혼하는데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운이 좋다고 웃는 모습이

짠하고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럽습니다


아기를 가진 치에가

병 때문에 못 낳는다고 하자

아버지는 죽을 각오로 낳으라고 합니다

의사는 재발할 수도 있으나

아기를 낳으면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거라고 하죠


바닷가를 산책하던 

아기를 낳겠다는 치에의 말에

싱고는 감동의 눈물 주르르~

낳기로 했다는 딸의 문자를 받는

아버지모습은 쓸쓸합니다


아기의 이름을 하나라고 지은 것은

꽃처럼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는

치에의 마음이 담겼는데요

9개월 후 하나가 젖을 먹지 않아

병원에 들러 재발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꼬맹이 하나와 함께 가다랑어포를 넣어

미소시루를 만들어 맛있게 먹으며

치에는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하나의 네 살 생일 축하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현미 생활'

블로그를 업데이트하며

자신의 빈자리에서 살아가게 될

하나에게 요리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만약 엄마가 없어지면

미소시루는 네가 만들어야 해

건강하려면 잘 먹어야 하고

잘 먹으려면 잘 만들어야 해~

그렇게 어린 하나에게

미소시루 만드는 법을 가르칩니다


싱크대가 높아 발판을 딛고 올라서서

고사리손으로 꼬무락대는 딸을 보며

죽을 각오로 하나를 낳으라고 한 아버지에게

치에는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됩니다

근육병을 앓았던 아버지도

사는 데 자식이 힘이 된다는 것을

투병 중에 이미 아셨던 거죠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싶으나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치에는

나중에 하나의 결혼식에 가면

부르려고 했다며

엄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하나가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힌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비가 그치면 마음이 열리네

목소리여 가 닿으렴

사랑스러운 꽃에게

깊은 인연으로 태어난 꽃

별의 저편까지 빛을 비추네

내일의 운명은 아무도 몰라

활짝 피어 뽐내렴

사랑스러운 꽃이여'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던

하나는 엄마의 노랫소리를 들어요


'인연' 콘서트 무대에 서는 치에를 위해

하나는 미소시루를 만들어

보온병에 담아 옵니다

함께 미소시루를 마시고 기운을 내는

치에와 하나를 카메라에 담으며

하나만 보고 노래하라는 싱고에게

인생의 7할이 운이라면

자신은 운이 좋다고 치에는 웃어요


마지막 공연에서

그녀는 딸을 향해 중얼거립니다

'하나야 오늘 이 무대에

엄마가 섰다는 걸 꼭 기억해 주렴'


내가 만 개의 별이 되어

너의 외로운 밤을 비춰줄게

수많은 빛을 엮어 3억 광년 후에도

쭉 네 곁에 있을 거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알알이 눈물로 엮어 내는

엄마의 사랑이 애틋합니다

엄마에게 배운 미소시루의 따스함으로

하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엄마의 노래를 기억하며

밀려드는 슬픔과 다정히 손잡아 줄

기쁨도 함께 맞이하게 될 테죠


엄마 없는 세상은 슬픔이지만

엄마와 함께 한 꽃 같은 기억으로

다가오는 슬픔을 감당하며

하나는 엄마의 블로그 제목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현미소녀로 씩씩하게 자랄 거예요

모두에게 꽃처럼 사랑받는

하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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