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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Oct 01. 2024

초록의 시간 856 시간의 바람

커피 친구 옥수수빵

시간이 바람이라면

세월은 회오리바람인 걸까요

계절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느닷없이 토끼굴 아래로 굴러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전혀 낯선 곳에 와 있는 듯한

이 느낌은 대체 뭘까요


앨리스는 언니와 강변 소풍 중에

나른함에 졸다가 꿈인 

환상인 듯 상상인  듯

하얀 토끼를 만나게 되죠


사람도 아닌데 중얼중얼 말도 하고

회중시계를 꺼내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조끼까지 차려 입은 하얀 토끼를 따라가다가

토끼가 뛰어내린 굴 속으로

덩달아 굴러 떨어집니다


낯선 굴 속에 떨어진 앨리스는

이상한 약을 먹고 몸이 커지기도 하다가

부채를 부치면 몸이 줄어들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자 연못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신기한 마법 같은 세상에서

자신의 눈물 연못에 빠져

이상한 동물들을 만나기도 해요


그러다가 3월의 토끼와

모자장수와 산쥐가 모여 벌이는

끝이 나지 않는 다과모임

초대받기도 하는데요


3월의 토끼가 앨리스에게

차를 좀 더 마시라~고 권하자

앨리스는 아직 아무것도 못 마셨는데

더 마시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죠


그러자 모자장수의

엉뚱한 중얼거림 뒤를 이어요

아무것도 안 마셨을 

더 마시라는 건 말이 되지만

마시라는 말이 안 된다는

가볍고 유쾌한 말장난이 재미납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 가사

패러디했다고 하죠


키다리 옥수수가 익어가는

뜨거운 계절 여름 지나

옥수수 대신 옥수수빵을 먹는

가을이 무르익어가는데

마음은 알알이 영글지 못하고

창밖의 빗소리만 멜랑콜리합니다


시간이 마구 헤쳐 풀어놓은 바람인 듯

소매자락에 나를 휩싸 안고 

거침없이 굽이굽이 흐르는 동안

옥수수 알갱이처럼 야무지게 영글지도 못한

온갖 감정들만 소란하고 번잡한 계절

지금은 떠돌이 가을입니다


낯설고 이상한 나라에 뚝 떨어진

앨리스처럼 길을 잃고 서성이는 가을

나도 체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면

앨리스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물어봐도 될까요


누구든 어디로 가고 싶은지

거기에 달려있다고

체셔 고양이가 말해줄까요

어디든 상관없다는 앨리스의 대답처럼

당돌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없다고

체셔 고양이가 답해 줄까요


그렇군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게 중요한 거죠

내가 원한다면

어느 길이든 상관없는 거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거니까요


3월의 토끼도 아니고

앨리스도 아니지만

커피와 옥수수빵으로

나 홀로 다과회부터 해야겠어요


상상과 모험의 토끼굴에

앞뒤 재지 않고 거침없이 빠져 들어가는

눈빛 반짝 일곱 살 소녀는 아니더라도

3월의 토끼와 모자장수처럼 

유쾌하게 말장난도 주고받으며

가을의 낭만과 감성을 나눌

내 마음의 친구들도 초대해야겠어요


즐거운 인생은 아니더라도

가을은 유쾌한 농담과

나만의 엉뚱 발랄한

판타지가 필요한 계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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