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ring Sep 29. 2024

초록의 시간 855 외톨이로 사는 법

영화 '보이콰이어'

맑고 투명한 파랑으로

자꾸만 높아지는 가을하늘이

까치발을 하고 애써 발돋움하는

외톨이 하늘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가을이라는 계절 탓일까요


누구라도 가을에는

스스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홀로 구르는 까칠 밤송이처럼

외톨이가 되어보는 순간이

문득  있으니까요


영화 '보이콰이어'의

소년 스텟(가렛 워레잉)은

타고난 목소리 천재이지만

인싸 아닌 아싸

홀로 변두리를 떠도는

외톨이 소년입니다


외톨이에 반항아인 스텟

핑크옷이 잘 어울리는 상냥한 교장 선생님

미스 스틸(데보라 윙거)의 배려로

국립소년합창단 '보이콰이어'의

오디션 기회를 얻습니다


쉽지 않게 만난 기회를

야무지게 붙잡는 대신 엉뚱하게도

합창단 지휘자인

카르벨레 선생님(더스틴 호프만)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달아나는 바람에

그만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알코올 중독 엄마의 갑작 사고로

진짜 외톨이가  반항 소년 스텟은 

보육원으로 가야 할 처지에서

12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와 함께

음악학교로 가는데요


나이도 제법 많은 데다가

음악 교육은 받아본 적도 없는데

어중간한 학기 중간에

얼마면 됩니까~ 묻고 기부금 투척하며 

아들을 입학시킨 멋쟁이 부자 아빠는

잘 곳과 용돈과 먹을 것이 생긴 거라고

넌 똑똑하니 잘할 수 있다~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휘리릭 사라집니다


아빠가 나타나면 뭐 해~

다시 혼자 남는 스텟은

여전히 부적응 상태인데요

신발 긁는 소리가 E플랫이라는

안경 쓴 울 선생님(케빈 맥헤일)다독임이

그나마 소년의 외로움을 어루만집니다

잘 해낼 거야 괜찮아~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합창에서

스텟은 자신의 목소리에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 낯설기만 하

악보조차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 

어설픈 왕초보입니다


40개의 목소리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서로 교차 병합한다는 친구들의 노래를

혼자 겉돌며 몰래 새겨듣다가

친구들의 소리를 기억해 내며

서툴게 소리를 내보는 모습이

애잔하고 안쓰럽습니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첫 오디션 때 뒤꽁무니를 보이며 달아나

일단 비호감이지만 그래도 재능 있는

소년이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도록

무심한 듯 깊은 마음으로 지켜보는

카르벨레 선생님은 츤데레 매력으로

스미듯 다가섭니다


뒤늦게 악보 보는 법을 배우는 스텟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발음법을 배우는

수업 중에 울리 선생님이 건넨

말씀에 온전히 귀를 기울입니다

스텟 가슴에서 소리를 내 봐~


순회합창단 정식 단원도 아닌

어정쩡한 연습생 처지인 스텟은

친구들의 시샘 속에서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농구하다 말고 선생님들 앞에서

'자비로운 예수'를 멋지게 부릅니다


노래는 목소리만으로 안 된다고

여전히 스텟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르밸레 선생님에게 부탁하며

성탄연휴 동안 연습 후  

다시 한번 오디션기회 주자고

울리 선생님은 모두를 다독입니다


연휴를 텅 빈 학교에서 혼자 보내며 

진짜 고독을 느끼는 외톨이 소년 스텟은

절실함을 담아 부른 브리튼의 자장가로

오디션을 무사히 통과하고

드디어 연습생 설움 굿바이~


메이저 입성을 환영한다는

메인보컬 앙드레의 비아냥 속에서

순회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합창 투어를 시작하는데요


메인보컬 앙드레의 감기로

느닷없이 대타가 되는 스텟은 

여왕 안느의 아리아 솔로를 

무대에서 부르게 됩니다


헨델이 싫어요~

헨델도 가수들을 싫어했어

무조건 지휘자를 따라가~


악보까 빼돌리며 앙드레가  방해하지만

악보 없이 기억을 더듬어 부르는 스텟은

지휘자를 따르며 박수를 받고

지켜보던 아빠는 감동합니다


저스틴 교장(캐시 베이츠)

뉴욕 리버사이드성당 부활절콘서트에서 

메시아 공연을 3옥타브 높여 하자며

콘서트에서 헨델의 신성한 음악으로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 걸

보여달라고 합니다


'뭐가 됐든지 남은 인생에

또 다른 재능이 찾아올 거야

대성당 무대에 선 순간

그 순간의 너를 느껴봐

음악을 느껴봐

너라는 음악을 느끼고

스스로를 축복해~'


할렐루야~ 솔로 파트에서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사랑스럽고 행복하게 노래하며 웃는

스캣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건치미 드러내며 웃는 울리 선생님

더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아빠는 자신의 가족에게

스텟의 존재를 알리고

변성기가 시작되는 스텟에게

목소리와 음색이 변하더라도

수업 그 자체와 과정이 의미라는

울리 선생님의 말씀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추천서 따위 안 쓴다는 

까칠 카르벨레 선생님은

경력 아닌 인생을 가르쳐야 한다고

넌 내가 만난 최고의 학생이었다~ 는

멋진 칭찬으로 작별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방학이 시작되고

행운을 빈다~

울리 선생님의 다정한 배웅에 이어

어서 가라 잘 가~

음악보다 인생을 가르쳐 

카르벨레 선생님의 까칠한 배웅을 받으며

돌아서니 아빠와 새엄마의  상냥한 마중이

외로운 소년을 기다립니다


친절하게 가방 들어주는 아빠가 

뉴욕에 있는 좋은 학교를 찾았으니

함께 살자며 웃음 건네고

스텟의 새 출발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다가 

다시 안경을 쓰는 카르벨레 선생님의

츤데레 표정으로 영화는 흐뭇 엔딩~


소년이나 어른이나 그 누구나

가을 밤톨 하나처럼 툭

세상에 떨궈진 외톨이라는 생각을 하며

요즘의 나를 새삼 돌아봅니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만가만 떠올려보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뒤를 이어요


혼자 사는 법을 알아야

함께 어울리는 법도 배울 수 있고

진정한 외톨이가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초록의 시간 854 오늘의 복 한 송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