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76 초록잎 싱그러우나
인생의 신호등
초록잎 싱그러우나
붉은 잎 깊은 눈매 아름다워요
초록은 희망으로 푸르게 반짝이고
단풍은 바람 따라 제멋대로 흩어지며
여유롭게 자유를 누리는 듯~
폭설로 시작된 겨울을
조심스럽게 마중하러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듭니다
폴폴 가비얍게 날리던 첫눈이
슬로모션처럼 나풀대더니
펑펑 함박눈으로 변하다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의 짐처럼
묵직하게 내려 쌓였어요
느닷없는 폭설에 놀라
낙엽 배웅도 제대로 못하고
덥석 겨울을 맞았으니
눈에 젖은 낙엽들이라도
가만가만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가을과 작별하고 싶어
길을 건너려고 교차로에 서 있는데
금방 빨강불로 바뀐 후라
물끄러미 한참을 기다립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내 인생의 신호등은 지금
빨강일까요 초록일까요
맑아진 하늘을 보며 중얼거립니다
내 인생 교차로의 신호등은
언제나 맑고 순한 하늘색이기를
희망하고 또 희망한다고~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한순간 바닥으로 내려앉았다던
어느 친구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바닥에 주저앉는 기분 알죠~ 압니다
그 친구님도 인생의 신호등 앞에서
발이 묶인 듯 막막한 심정이었을 테죠
친구님아~ 우린 지금
인생이라는 놀이공원에
초대받아 살고 있는 거 아닐까요
인생이 놀이공원이라면
놀이기구에 익숙하지 않은
겁쟁이 그대와 내가 하필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롤러코스터 탑승권을 손에 쥐고
두 눈 꿈벅이며 입장을 한 거 아닐까요
동네 어느 아파트
공동현관 유리문에 붙어 있는
부탁! 합니다~ 앞에서
친구님을 생각하며
한참 동안 서 있었어요
'꼭 문을 닫아주세요
이 통로는 나뭇잎이 많이 들어오고
먼지가 들어오는 바람길입니다
너무 추워요'
간절한 부탁~이라는
간절함 꾹꾹 눌러 담은 글씨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린 지금 바람길에 서 있는 거라고~
바스락 나뭇잎 소란하게 날아들고
먼지까지 우르르 몰려 들어와
춥고 번잡한 길에 서 있는 우리
그래도 지난가을
은행이파리 금빛으로 아름답고
붉디붉은 옷 떨쳐입은 단풍잎들
사랑인 듯 진심 가득 고왔어요
인생의 놀이공원이
낯설고 힘들고 버겁다가도
한순간의 기쁜 만남에
시름 잊고 떨구며
한바탕 웃기도 하고
인생의 신호등이
늘 발을 묶는 빨강인 듯 하지만
초록으로 빛나는 순간들도
기쁨으로 스치듯 지나가며
우리를 반겨 맞아 주기도 하고
바람길이 춥고 시려도
게으른 바람이 느리게 지나가다가
다정한 손길로 어깨를 다독이며
잠시 휴식과 평온을 주기도 하니까요
인생의 롤러코스터
겁내지 말기로 해요
두렵고 무서울 땐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돼요
인생의 신호등도
초록에 건너고
빨강에 쉬면 되는 거죠
순조롭게 건너는 초록불 고맙고
잠시 머무르는 빨강불 덕분에
숨 돌릴 수 있는 여유도 있으니
둘 다 감사히 반기기로 해요
소란한 바람길 앞에서도 우리
미리 주눅 들지 않기로 해요
어슷비슷 마음 통하는 길동무를 만나
어깨동무 도란도란 재미나게 걸으며
고단함 달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