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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941 강가의 햇살

눈부신 기쁨

by eunring

자꾸만 보아달라고 하면 어떡해

꽃도 아닌데 보고 또 보며

어루만져 달라고 하면

정말 어떡해

그리움으로 여리여리 피어나는

곱고 예쁜 복사꽃도 아닌

수줍은 각시붓꽃도 아닌

너라는 인생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불쑥 손 잡아 달라며 다가서다가

손 내밀면 휘리릭 매정하게

저만치 달아나고 또 달아나면서

손을 잡아달라 보채면

난 정말 어떡해

손 내밀면 이미 넌

저만치 멀리 사라지고 없는데


알고 싶어도

알지 못하는 인생이라서

알지 못해 궁금하면 궁금할수록

도무지 알 수 없는 인생길이어서

난 몹시 당혹스러워

나더러 자꾸만 내어놓으라 하면

무얼 더 내놓아야 할지

대략 난감~


아는 길 따라 유유히 가고 싶어도

가다 보면 언제나 막다른 길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안 저 깊숙이

문득 슬픔이 빗방울 되어 아롱지다가

뾰족한 아픔으로 치솟아 오르니

그러니 나는 어떡해


아는 길은 알아서 버겁고

모르는 길은 모른 만큼 겁이 나서

낯선 길과 마주칠 때마다

발걸음 멈추고 엉거주춤

따라 멈춘 어설픈 내 그림자와 함께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곤 해


그래도 강가의 햇살이 있고

햇살 끌어안고 수줍게 웃어주는

각시붓꽃 보랏빛 향기가 주는

차분한 위안이 있으니

그래 그 밀이 맞아

고단한 하루도 어김없이 가고

즐거운 하루도 거침없이 흘러간다는

무심한 그 말이 오히려 위로가 돼


깊숙한 아픔도 서늘한 슬픔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고 또 흐르니 고마울

덥석 다가설 땐 유난히 선명하다가도

스쳐 지나고 나면 아련해지니

그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강가의 햇살이

이토록 눈부신 기쁨이고

피어나는 꽃들이 저마다 축복임을

다시금 깨달으며 웃어보려 해


비록 난 햇살이 아니지만

햇살을 담뿍 끌어안을 수 있으니

지금 이 순간 눈부시게 행복하고

피어나는 꽃이 될 순 없으나

꽃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있으니

그 또한 내가 누릴 수 있는

맑고 순한 즐거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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