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과 우울 사이
연보라 라일락 비에 젖을 때
아련히 떠오르는 풍경이 있어요
8층 전망 좋은 방에서는
바로 아래 공중 정원이 내려다보이고
보랏빛 라일락꽃이 그림처럼 피어났어요
전망 좋은 방 창가에는
철부지 명랑 환자가 있었고
그 곁에는 어리광쟁이
우을 환자가 있었어요
커튼으로 서로를 가려놓아
얼굴을 마주할 기회는 드물었으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죠
방이 아닌 병실
전망 좋은 병실 창가에는 명랑 환자
바로 곁에는 우울 환자가 있었던 건데요
명랑 환자는 상황이 번거로움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웃자~
명랑 환자가 되기로 작정을 한 거죠
완전 쫄보에 겁쟁이지만
달아나지 못하고 어차피 마주할 거라면
뒷걸음질도 칠 수 없을 바에야
그래도 웃어보자고 다짐을 하고
웃으며 명랑 환자가 되자~
웃픈 마음을 먹었던 거죠
바로 이웃 우울 환자는
백일 것 지난 어린 아가를
집에 두고 온 어리디어린 엄마였는데
아기랑 영상 통화를 하며
훌쩍거리기 일쑤였어요
철부지라도 엄마는 엄마라서
아기 이름을 부르며 애써 웃다가도
울기 시작하는 아기를 달래다가
엄마도 따라 울먹울먹~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안타까운 풍경이 눈에 선했어요
어린 인생 첫 아픔이라 그런지
아프다고 징징대다가는
입맛이 없다며 밥도 잘 먹지 않아
의사 선생님의 걱정 어린 말씀이
종종 들려오기도 했어요
집에 돌아가 아기 돌보려면
밥을 잘 먹어야 한다고 다독이시는데
철부지 어린 엄마는 우울하다고
먹고 싶지 않다며 또 훌쩍~
그래도 엄마는 엄마였어요
먼저 퇴원한다며 인사를 하기에
애썼다고 더는 아프지 말라고
배웅하는 명랑 환자에게
어린 엄마는 배시시 웃으며
기특한 한 마디를 남겼답니다
집에 가서
아기 잘 키워야죠~
우울하다며 징징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야무진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
앳된 뒷모습에 엄마라는 이름표가
단단히 똭~ 붙어 있어서
사랑스럽고 고마웠어요
그럼요
세상에 우울한 환자는 있어도
우을한 엄마는 없으니까요
몸이 아픈 엄마는 많아도
마음까지 아픔에 꺾이는
여린 엄마는 없으니까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혼자 있을 때 우울하다가도
자식 앞에만 서면 햇살처럼 환하고
자식을 향해 가는 엄마의 발걸음은
꽃길 아닌 바람길이라도
언제나 힘차고 씩씩한 거죠
누가 뭐래도
엄마는 엄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