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이야
눈먼 이의 곁을 서성이는
나는 바람이야
살랑 스치는 수줍은 바람이기도 하고
여유를 즐기는 느긋 바람이다가도
휘모리장단처럼 거침없이
마구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이기도 해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한 줄기 바람이 바로 나야 나~
그런데 왜 지금은
부드럽게 스쳐가거나
휘리릭 거침없이 불어대지 않고
머뭇머뭇 서성이냐고 묻고 싶겠지
판타지 바람이어서~라고 답하면
우문현답 아닌 동문서답이 될 테니
그렇게 답하지는 않을게
눈먼 이가 앉아 있는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서
나라는 바람이 지금
맘껏 날아오르지 못하는 건
소원의 종이학 한 마리 때문이야
곱고도 선명한 빨강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있기 때문이지
고사리손으로 색종이를 접으며
눈먼 이의 꼬맹이딸 영영이가
건절한 소원을 담은 종이학이거든
클쑤마스는 왜 꼭 12월이야 하냐고
배 뿡뿡 산타할아버지 대신
산타할머니가 올 수는 없냐고
산타할머니 대신
선타엄마가 오면 안 되는 거냐고
착한 아이 영영이에게
선물을 주시려거든
인형도 공주옷도 장난감도 아닌
예쁜 산타엄마를 주시라고
다른 선물 1도 필요 없으니
그립고 보고픈 엄마를 보내달라고~
사랑스러운 소녀 영영이가
귀욤 글씨로 또박또박
소원을 적은 진한 빨강 종이학을
나뭇가지에 걸어놓았으니
내 바람자락이 주춤거릴 수밖에~
영영이의 소원을
헛되이 날려 보내고 싶지 않아서
머뭇머뭇 서성일 수밖에~
사실 난 말이야
눈먼 이의 멋진 머리카락을
살며시 흩어 놓으며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나 잡아봐라~
저만치 달아나고 싶거든
눈먼 이의 그윽한 분위기를
잠시 흔들어보고 싶으니 말이야
그가 희고 긴 손가락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
그 순간의 무심함에 얹히는 눈부신 햇살에
내 마음이 심쿵 내려앉거든
그 멋진 순간의 눈부심이
나 역시 간절하지
그러나
사랑스러운 꼬맹이 소녀
영영이의 깊은 간절함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발걸음 숨 죽이며
망설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