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눈먼 이
그리움이 사무쳐
눈이 먼 사람이 있다고 해봐
사랑에 눈 멀기는 해도
그리움에 눈이 짓무르기는 해도
그리움에 눈이 멀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잠시만 참아 줄래?
어디까지나 판타지니까
다만 한 뼘 정도의
작고 소중한 판타지니까
그는 나무 그늘 아래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그리운 이를 생각하곤 하지
아침 햇살 아래서는
수줍고 앳된 소년으로 보이다가
한낮에는 푸르른 청년으로 보이다가
해 질 무렵에는 제법 나이 지긋한
중년의 사내로 보이기도 해
어디까지나 판타지니까
의자는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아
포근한 방석도 깔려 있지 않으나
그는 늘 편안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지
가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앉아 있는 사람 같기도 해
깊은 생각의 늪에 빠진 듯 보이다가도
무심한 듯 보이는 것은
그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거야
그가 문득 눈을 뜬다면
그의 눈빛의 빛남으로 인해
지금은 알 수 없는 그의 표정뿐 아니라
세상의 표정이 달라질지도 몰라
비록 한 뼘이지만 그래도 판타지니까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가 눈을 뜬 것을 본 적은 없으나
언젠가 눈을 뜨게 되리라는 희망은
얼마든지 가능해
그리움에 눈먼 이니까
사무치게 그리운 이를 만나면
분명 눈을 뜨게 될 거야
그리운 이를 바라보며
쓰담쓰담 눈으로 어루만지고
깊고 깊은 사랑의 눈빛을 건네려면
눈을 뜰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