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판타지 046 바람의 길

금사빠 바람의 혼잣말

by eunring

촘촘한 나무들 사이에도

한 줄기 길이 생긴다

누군가 발자국을 내기 시작하면

또 다른 발자국이 겹치고 얹혀

마침내 길이 만들어진다


한 사람 두 사람

또 한 사람 다시 두 사람

걷고 또 걸으면 길이 된다

삐뚤빼뚤 울퉁불퉁거리다가

어느 날 문득 평평하고 단단하고

반반하고 반듯한 길이 되는 거지


바람의 길도 마찬가지야

금사빠에 오지랖쟁이

극세사 겁쟁이답게 완전 소심쟁이인 나

오직 영영이만의 상냥 바람

냥바인 나의 길도 매한가지야


오래전 집 떠나 개고생 하며

어느 누구의 길도 아닌

오직 나만의 낯선 길에서

우연히 푸른별꽃아기님을 만나

낯설고 먼 길을 돌고 휘돌아

이제는 영영이를 지키는 바람이 된

나의 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앞으로의 일을 나는 모른다

아직은 알 수 없어


그러나 나는 알아

그 길이 보드라운 비단길이 아님을

그 길이 결코 곱고 향기로운

꽃길도 아님을 알고 있어


어떤 길이든

설렘과 두려움으로 다가서는

그 길이 나를 두 팔 벌려 반기게 될지

까칠하고 매정한 눈빛으로

고개 돌리며 외면하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설렘만큼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 한없이 두려운

그 길을 앞두고

나 지금 떨고 있니?


은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으나

그래도 나는 그 길을

분명 가게 될 거야

영영이만의 상냥 바람

냥바가 되면서

이미 한 걸음 내디딘 거니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영영이의 길도

그렇게 만들어질 거야

영영이의 또박 걸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솔바람 부는 오솔길을 만들고

작고 여리고 서툰 걸음이지만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또박또박 어린 발자국마다

순간의 흔적들이 남게 될 거야


영영아~

막막하고 두렵지만

우리 겁내지 말자

미리 겁먹지 말자

투덜이 바람이 안고 온

영롱 할머니가 이미

그 문을 열어 주신 거니까


영영이 핑디의 길을 위해

낯선 시간의 떨림과 비틀림과

뒤틀림과 엉킴 속을 달려

온갖 위험과 부작용과

후유증을 무릅쓰고

무조건 달려와 영영이를 만났으니

문을 열면 이제 너만의 길

영영이의 길이

새롭게 시작될 거야


의리대장 순이 바람

그녀가 여행 주머니에 넣어 온

뽀시래기 소식에 의하면

영영이와 엄마를 이어주는

바람의 길이 이미 만들어졌고

그 길의 첫 손님이

바로 영롱 할머니라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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